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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긴 호흡ㅣ메리 올리버, 시를 짓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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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긴 호흡ㅣ메리 올리버, 시를 짓기 위하여 (마음산책)


시를 사랑하고 시를 짓기 위한 '긴 호흡'에 대해 써 내려간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Mary Oliver, 1935-2019)의 산문 <긴 호흡, Blue Pastures>입니다. 국내에서는 9.11 테러 희생자 추모식에서 조 바이든이 낭송한 시 '기러기, Wild Geese'로 잘 알려진 시인입니다. 

 

착하지 않아도 돼. /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 / 너의 절망을 말해 봐, 그럼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

_메리 올리버 '기러기(Wild Geese)'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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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긴 호흡>에서는 메리 올리버의 시론을 들을 수 있습니다. 글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단어와 표현의 속 뜻은 무엇인지, 창의력은 어떻게 끌어내는지, 작가란 어떠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메리 올리버의 생각과 조언이 담겨있습니다. 서론에서부터 속도감 있게 읽어내기 아까울 만큼 풍성한 울림이 담겨있습니다. 

 

이 책을 쓰는 건 개를 목욕시키는 일과도 같았다. 하지만 개를 목욕시키다 보면 개가 너무 깨끗해여저 개다움을 완전히 잃을 위험에 처할 때가 있다. 나는 이와 같이 책도 너무 많이 씻어내게 될까 봐 수건을 내려놓고 책에게 다 끝났다고 말한다. 왕겨나 모래 같은 실제 세계의 쪼가리들이 이 책의 페이지들에 조금은 달라붙어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_「긴 호흡」 서문 가운데

 

반려동물을 목욕시키는 것을 글의 퇴고 작업에 연결시키는 메리 올리버의 글이 더없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개다움을 완전히 잃을 위험', 이 작품 <긴 호흡>이 메리 올리버에게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표현입니다.  

 

 

창작하는 일에는 고독과 방해 없는 집중이 필요한데 '열망하는 확실성'의 상태에 이를 때까지 지속해야한다고 말합니다. 글을 쓰는 것,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것, 영화를 만들거나 춤을 추는 것, 이런 모든 창조적인 일에는 처절한 고독이 뒤따릅니다. 세상이 정하는 완벽과 만족에 대한 기준이 없기에 자신이 '됐다'라고 할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예술은 비범함에 관한 것이다."

 

메리 올리버는 예술의 비범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세 개의 자아라는 비유를 꺼냅니다. 하나는 과거의 어린아이, 또 하나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사회적 자아, 마지막은 영원성을 갈망하는 자아입니다. 예술은 이 세 번째 자아의 지배 아래 있는데  비범한 에너지와 집중력 없이는 창조적인 작업을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 비범함은 어디에 있는가? 메리 올리버는 비범함의 지표로 '야외', '집중하는 정신', '고독', '모험(risk taker)', '가장자리'를 언급합니다. 소위 예술가들의 삶이 고단한 이유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지표들입니다. 덧붙여 창조적인 사람들은 멍하고, 무모하고, 사회적 관습과 의무를 소홀히 한다는 인식에도 메리 올리버는 동의합니다. 세 번째 자아의 지배아래 있는 예술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기 때문이라고 대변합니다.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업은 다른 방식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애석한 사람들은 창작에 사명을 느끼고 창조력이 안달하며 솟구치는 걸 감지하면서 거기에 힘도 시간도 들이지 않는 이들이다. 

_「긴 호흡」 본문 가운데

 

예술가가 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부분입니다. 위 표현에서 메리 올리버가 '애석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용기 없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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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올리버는 평소 바지 뒷주머니에 작은 수첩을 갖고 다니며 떠오르는 생각이나 눈에 들어오는 자연현상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페이지 순서나 글의 앞뒤 논리는 다 무시하고 되는대로 끄적입니다. 그것이 작품의 원료가 되는데 그 기록들을 몇 개 <긴 호흡>에서 공유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제 마음엔 이 두 문장이 꼭 들어맞습니다. 

 

"변덕스럽기를 멈춰선 안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선 안 된다." 

 

 

일상에서 자주 쓰는 표현에 담긴 무의식을 지적하는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큰 통찰이 있었습니다. '귀엽다', '매력적이다', '사랑스럽다' 같은 말들입니다. 제 고양이 다콩이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쓰는 표현이라 메리 올리버의 지적에 '아...!' 하고 아프게 깨닫습니다. 

 

'귀엽다', '매력적이다', '사랑스럽다' 같은 말들은 잘못됐다. 그런 식으로 지각되는 것들은 위엄과 권위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귀여운 것은 오락거리고 대체 가능하다. 말들은 우리를 이끌고 우리는 따라간다. (...) 우리는 그것들을 예쁘고, 섬세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 우리의 정원으로 가져온다.  

_「긴 호흡」 본문 가운데

 

미국 시인 맥신 쿠민(Maxine Kumin, 1925-2014)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눈보라 관찰자"였던 것처럼 메리 올리버는 "습지 순찰자"라고 일컬었습니다. 자연 속에 살며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던 두 '철학자'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글을 만날 수 있어 기쁩니다. 이제 메리 올리버의 시집을 찾아봐야겠습니다. 


2023.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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