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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깊이에의 강요ㅣ파트리크 쥐스킨트, 삶과 예술의 진정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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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깊이에의 강요ㅣ파트리크 쥐스킨트, 삶과 예술의 진정한 가치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 1949)의 단편 <깊이에의 강요 Drei Geschichten und eine Betrachtung>입니다.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펴낸 <깊이에의 강요>는 이 작품 외에 쥐스킨트의 주옥같은 단편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 <문학의 건망증> 이 같이 수록된 작품집입니다. <깊이에의 강요>는 아주 짧은 소설이지만 극적인 전개 덕분에 읽는 동안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작품이 끝나버립니다.  

 

 

 

작품의 큰 축은 자신의 예술에 깊이가 없다는 평을 듣고 번민하고 고뇌하다 죽음을 택하는 젊은 예술가와 그녀의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평론을 썼다가 의도치 않게 작가를 죽음으로 내몬 악의 없는 평론가, 두 사람입니다. 평론가를 탓할 것인가, 예술가의 어리석음을 안타까워할 것인가, 하는 류의 죽음에 대한 책임소재를 묻는 작품은 아닙니다. 쥐스킨트는 독자들이 작품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혹은 현실에서 슬쩍 비켜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 젊은 여류 화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녀의 작품들은 첫눈에 많은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것들은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다."

_「깊이에의 강요」 가운데 평론가의 말

 

평론을 위한 평론 느낌이 나는 문장입니다. 앞부분 '젊은'과 '여류 화가'라는 수식어가 '깊이가 없다'라는 서술어와 호응이 되는 듯 보입니다. 이 책 <깊이에의 강요>는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지속적으로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세상에 내놓는 메시지에 대한 은밀한 단서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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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가 죽은 후 동일한 평론가가 쓴 글입니다. 역시나 평론을 위한 평론입니다.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_「깊이에의 강요」 가운데 평론가의 말

 

생계를 위한 직업으로서 평론을 하는 사람과 삶으로서 예술을 하는 작가라는 구도로도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일로써 평론을 하는 이에게 자기 삶을 송두리째 '깊이 없음'으로 평가절하 당한 예술가라면.. 무겁고 씁쓸한 마음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마지막에 실린 에세이 <문학의 건망증>은 우리가 왜 문학작품을 읽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길 권합니다. 문학작품과 우리 삶은 어떠한 함수 관계에 있는가, 그 관계성에서 문학이 가진 근원적인 문제ㅡ라고 불러도 된다면ㅡ를 찾아내고자 합니다. 

 

순간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비탄이 나를 사로잡는다. 문학의 건망증, 문학적으로 기억력이 완전히 감퇴하는 고질병이 다시 도진 것이다. 

_「문학의 건망증」  본문 가운데

 

이 작품은 글을 읽고, 글을 쓰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처럼 문학을 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번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문학을 즐기는 단순 독자는 문학의 효용성을 따질 이유도, 그것이 고민거리라고 여길 틈새도 없는데 말이죠. 아니면 저의 이 생각조차 '문학이 가진 근원적인 문제'로 분류된다면.. 제 사유의 깊이가 아직 부족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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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건망증> 본문 중 이 부분을 읽으면서 쥐스킨트의 영혼이 일면 나와 닮은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논리가 순식간에 극단으로 치닫습니다.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는데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은둔자로 살아가는 작가에게 숨겨진 귀여움을 찾아낸 듯 반갑습니다. 

 

도대체 왜 글을 읽는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지금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책을 한 번 더 읽는단 말인가? 모든 것이 무로 와해되어 버린다면, 대관절 무엇 때문에 무슨 일인가를 한단 말인가? 어쨌든 언젠가는 죽는다면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일까? (...) 슬그머니 서가로 돌아가 저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그런 책이 있다는 것조차 잊힌 채 꽂혀 있는 수없이 많은 다른 책들 사이에 내려놓는다. 

_「문학의 건망증」  본문 가운데

 

'언젠가 죽는다면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일까?' 까지 흘러가는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진 않지만 이 글의 논리를 따르자면 가장 적합한 종착점이긴 합니다. 무엇을 읽든지 지나면 뇌리에서 깡그리 사라져 삶에 전혀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무의식에라도 남아 삶에 면면히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저라면 후자가 맞다고 여기고 또 그렇다고 믿고 싶습니다.     


2023.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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