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거울이 된 남자ㅣ샤를 페로, 어른을 위한 동화 (특별한서재)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동화작가로 프랑스 대표 문인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 1628-1703)를 들 수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서는 어떤 작품을 썼는지 모를 수 있는데 샤를 페로는 <신데렐라 Cendrillon>, <빨간 모자 Le Petit Chaperon Rouge>, <장화 신은 고양이 Le Maitre Chat ou Le Chat Botte> 등 수백 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동화들을 쓴 '동화의 아버지'입니다. 작품의 유명세에 비해 이름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샤를 페로는 1628년 1월 프랑스의 부유한 가정에서 쌍둥이로 태어납니다. 위로 네 명의 형이 있었고 쌍둥이 형제는 태어난 지 여섯 달 만에 사망합니다. 페로의 부친은 파리 고등법원의 검사였고 형들도 법조인, 세무사, 의사, 건축가, 신학자 등의 길을 걸은 전형적인 부르주아 가문입니다. 페로 역시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고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프랑스 왕실에서 일합니다.
은퇴 후 세 아들과 딸 하나를 낳은 페로가 자녀 교육을 위해 동화를 쓰기 시작했으며 1697년 구전설화를 바탕으로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빨간 모자>, <장화 신은 고양이> 등의 동화를 써냅니다. 당시 17세기에 쓰인 페로의 동화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프랑스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이 책 <거울이 된 남자>는 샤를 페로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중 하나로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은 한 사교모임(Salon)에 참석했다가 언변이 뛰어난 한 참석자로부터 <거울이 된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화자가 이를 전달하는 형식으로 펼쳐집니다. 대상을 묘사하는 능력이 완벽해서 영혼까지 낱낱이 드러내는 포르트레(Portrait: 초상화 작가)인 '오랑트'라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상을 묘사하는 오랑트의 능력이 완벽하다는 데는 이론이 없었다... 문제는 나머지 기억력이나 판단력 따위의 능력은 전혀 발달하지 못한 것이 그 불균형의 원인이었다.
_「거울이 된 남자」 본문 가운데
오랑트는 거짓 없이 성심을 다해 사람들을 대합니다. 판단력은 떨어졌으나 여인들과 상담할 때 그들 각자의 개성과 나름의 장점을 찾아내 칭찬해 준 덕분에 그는 인기가 많습니다. 사실 그 칭찬 역시 억지로 짜낸 것이 아니라 오랑트의 진심이었기에 오랑트의 조언을 따라 자신을 고쳐나간 여인들은 한층 매력적으로 변해갑니다.
비극은 당대 최고의 미인 칼리스트와의 만남에서 비롯됩니다. 칼리스트는 그녀를 향한 오랑트의 '아름답다, 예쁘다'라는 묘사에 빠져 그를 신뢰하고 따릅니다. 어느 날 심하게 앓고 난 후 얼굴이 초췌해진 칼리스트가 위로를 얻고자 오랑트를 찾아가고 진실을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한 오랑트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몰골이 섬뜩하다"
충격을 받은 칼리스트는 머리핀으로 오랑트를 찔러 죽게 합니다. 오랑트는 죽어가면서도 그녀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자신의 소명을 끝끝내 다합니다.
오랑트의 죽음을 애석해하던 '사랑의 신'은 오랑트를 맑고 투명한 거울로 변하게 합니다. 생전에도 다른 사람들의 영혼까지 그대로 비춰주던 오랑트의 소명은 죽은 뒤 거울이 되어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특히 자신의 모습을 처음 '오랑트 거울'에 비춰본 사랑의 신은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도취되어 오랑트의 죽음마저 까맣게 잊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Narcissus) 이야기를 오마주한 부분인데 사랑의 신을 비추고 있는 오랑트 거울도 흐뭇해할 듯합니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이 <거울이 된 남자>로부터 얻는 교훈이 다르겠지만 죽음도 불사하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자 한 포르트레(Portrait) '오랑트'에게 별다른 심적 고통은 없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순수한 그의 영혼이 자기애에 빠진 사람들에게 주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거울을 들여다보며 부수고 싶다면 거울을 부수기보다는 당신 자신을 바꿔야 한다. _기욤 뮈소 「사랑하기 때문에」 가운데
2023.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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