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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방드르디 야생의 삶ㅣ미셸 투르니에, 무인도의 로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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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방드르디 야생의 삶ㅣ미셸 투르니에, 무인도의 로빈슨 (문학과지성사)


영국 작가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1660-1731)가 1719년 발표한 소설 <로빈슨 크루소 Robinson Crusoe>는 이후 수많은 '로빈슨류 소설'의 모티브가 됩니다.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 Lord of the Flies, 1954>, 쥘 베른의 소설 <15소년 표류기 Two years' Vacation, 1886>, 영화 <캐스트 어웨이 Cast Away, 2000> 등 무인도에 표류한 사람이 살아남는 스토리는 여러 매체에서 인기 있는 주제입니다.

 

'로빈슨류 소설' 가운데 가장 큰 혁신과 변화를 가져온 작품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이 책 <방드르디 야생의 삶 Vendredi ou la Vie sauvage, 1972> 입니다. 저자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 1924-2016)는 프랑스 작가로 1967년 첫 작품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Vendredi ou les Limbes du Pacifique>을 발표하며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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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드르디 야생의 삶>은 책의 주인공 로빈슨이 무인도 스페란차에 표류하며 겪게 되는 모험담입니다. 로빈슨은 스페란차 섬에 표착한 후 28년을 살면서 원주민 청년 방드르디를 만나고 그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배워갑니다. 표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로빈슨은 자신의 얼굴이 나무처럼 굳은 것을 보고 정서를 공유할 다른 생명체의 존재가 간절해집니다. 강아지 텐을 발견한 로빈슨은 서로 미소를 주고받는 법을 배웁니다. 

 

그는 혼자였기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미소를 지을 상대가 없어서 웃는 법을 잃어버린 것이다...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지만 미소를 지어 보일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텐을 바라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텐이 그에게 미소를 던지고 있었다. 

_「방드르디, 야생의 삶」 본문 가운데

 

정서를 나눌 존재,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주인공이 배구공에 얼굴을 그려 넣고 이름을 지어주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스페란차섬에서 로빈슨은 인디언 청년을 만나고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 나오는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오마주 한 '방드르디(Vendredi; 금요일)'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처음엔 로빈슨이 방드르디에게 농사를 짓고 요리하는 법 등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얼마 후부터는 방드르디에게 스페란차섬에서의 생활지혜를 하나둘씩 배워나갑니다. 어느 날은 구더기를 입에 넣고 잘게 씹어 어미 잃은 새끼 독수리의 부리 속으로 넣어주는 모습에서 동물을 돕기 위한 방드르디의 헌신적인 노력에 탄복하게 됩니다.

 

처음엔 서로를 의식하며 지내던 두 사람은 점차 허물없는 형제 같은 사이가 되어갑니다. 로빈슨은 방드르디를 따라 스페란차섬의 생활에 몸도 마음도 적응해 나갑니다. 

 

둘은 형제처럼 보였다. 더 이상 총독 같은 모습을 애써 갖추지 않았다. 그의 몸 역시 달라졌다... 방드르디에게서 용기를 얻어 로빈슨은 이제 햇볕에 몸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차츰차츰 그의 모습이 피어났다. 피부는 단단해졌고 구릿빛으로 변했다. 

_「방드르디, 야생의 삶」 본문 가운데

 

 

그러던 중 '화이트버드호'가 스페란차섬에 당도하게 되고 시간 개념 없이 살아가던 로빈슨은 마침내 날짜를 확인합니다. 그가 타고 온 '버지니아호'가 난파한 지 28년이 지났고, 그는 잊 50대 초로의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합니다. 그러나 스페란차섬에서 방드르디와 함께 보낸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 덕분에 그는 점점 젊어졌으며 멋지고 힘찬 삶을 위해 '무인도 탈출'을 포기하게 됩니다.

 

'화이트버드호'를 타고 온 사람들을 그가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문명이 파견한 사자였다. 그들과 함께 이곳을 떠난다면 그는 위엄 있는 표정의 백발이 성성한 늙은이가 될 것이고, 또한 그들처럼 어리석고 고약한 사람이 될 것이다.  

_「방드르디, 야생의 삶」 본문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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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방드르디와의 활기찬 삶을 기대하며 스페란차섬에 잔류한 로빈슨과 달리 방드르디는 '화이트버드호'의 매력에 빠져 한밤중 몰래 배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세상물정 모르는 가엾은 방드르디는 아마도 흑인 노예 신세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이때 로빈슨에게 한 청년이 다가오는데 '화이트버드호'에서 내린 견습 선원입니다. 배에서의 불행한 삶으로부터 도망쳐 로빈슨의 스페란차섬에 남기로 했다고 말합니다. 

 

운명이 완전히 뒤바뀐 방드르디와 견습 선원, 자연과 동화되어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던 야만인 방드르디는 로빈슨에게 야생의 삶을 가르쳐주고 떠났습니다. 이제 로빈슨이 방드르디가 되어 새로운 섬 주민에게 삶의 지혜를 전수해 주겠지요.

 

문명사회와 무인도. 방드르디의 안타까운 선택은 마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문명사회에서 온 버나드를 따라 '멋진 신세계'로 들어가기를 선택한 야만인 구역의 존의 모습과 오버랩됩니다. 


2023.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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