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ㅣ김혜남, 마흔이 된 이들에게 (메이븐)
다콩이는 자다가도 네모난 휴대폰을 갖다 대면 귀찮은 듯 고개를 살짝 돌립니다. 눈감고 자는 척하면서 제 일거수일투족을 늘 관찰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예쁘고 귀여운 걸 보면 왜 자꾸 사진을 찍는 건지, 입장 바꿔 생각하면 저도 누가 자꾸 카메라 들이대면 싫을 것 같아 많이 자제하고 있지만 오늘도 귀여운 피사체 다콩이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오래전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 2009>라는 책을 통해 김혜남 작가를 알게 됐습니다. 서른 즈음에 할 법한 고민에 대한 해답을 그때도 책을 뒤적거리며 찾았습니다. 약 10년이 지난 2022년, 저자는 이제 마흔이 됐을 그때의 서른 살들에게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2022> 이라는 제목의 책을 건넵니다. 책의 부제가 '벌써 마흔이 된 당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말들' 입니다.
책의 도입부에 이 책 제목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과 같은 나딘 스테어(Nadine Stair, 생애 미상)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자 김혜남은 그 시를 오마주한 자신만의 조언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수없이 해 본 사람과 매일 똑같은 행동만 반복하는 사람의 내일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며 살고 싶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 나는 더 많은 도전을 하고 웬만한 일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쌓인 경험들이 얼마나 값진지를 알기 때문이다.
_「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본문 가운데
책의 저자 김혜남은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해 온 의사입니다. 40대 초반 파킨슨병을 진단받고 지금까지 20년 넘게 병을 앓으면서도 방황하는 인생후배들을 위한 책을 쓰고 있습니다. 파킨슨병을 앓으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세상을 포용하는 힘이 커졌다는 김혜남 저자는 "병이 스승"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김혜남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로 잔잔한 유머와 위트를 들 수 있습니다. 자신을 위로하는 사람들에게 저자가 한 말입니다.
"제가요. 옛날에는 가진 거라곤 돈하고 미모밖에 없었거든요. 근데 나이가 드니까 병하고 빚밖에 안 남았어요."
_「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본문 가운데
이러한 유머러스한 태도, 특히 어려운 상황을 가볍게 대처하는 삶의 자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벌써 마흔이 된 독자들에게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나이가 더 들면 이 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요.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심리적인 안정과 유연함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라는 정신분석 전문의 다운 실제적인 조언도 잊지 않습니다. 바다가 깊을수록 파도가 잔잔하듯 생의 희로애락을 깊이 경험할수록 그 위에 정서적인 안정감이 자리를 잡습니다. 물론 지혜롭게 그 시간을 보내야겠지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는 이러한 깨달음과 회복을 얻었다'라고 말하는 성공스토리가 책, SNS, 영상을 통해 쏟아집니다. 개인에게 주어진 환경과 성향이 다 다른데 성공스토리를 공유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오히려 힘든 시기를 지나는 이들에게 결핍감과 좌절감을 남깁니다. 차분하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며 진솔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김혜남 저자의 글이 요즘 같은 때에 더 귀하게 여겨집니다.
2023.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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