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계속되는 이야기ㅣ시스 누테붐 소설, 삶/꿈/죽음 사이 어디쯤 (문학동네)
고양이가 모든 포유류 중 가장 꿈을 많이 꾼다는데 아마도 잠을 많이 자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도 다콩이는 해가 잘 드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낮잠을 즐깁니다. 실눈을 뜨는 바람에 얼굴이 찌그러져 나왔습니다. 그래도 귀엽네요.
제목에서부터 뭔가 묘한 흥미가 느껴지는 책 한권을 소개합니다. 시스 누테붐(Cees Nooteboom, 1933)의 <계속되는 이야기, Het Volgende Verhaal>입니다. 시스 누테붐은 네덜란드 헤이그 출신으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이름이 거론되는 네덜란드의 대표 작가입니다. 이 책 <계속되는 이야기>는 1991년 출간한 장편소설로 네덜란드 국내에서 보다 독일에서 센세이셔널을 일으킨 작품입니다.
첫 문장부터 독특합니다. 마치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변신, 1915> 첫 문장을 보는 듯합니다. 오마주 한 것일까요. 죽었나? 살아있나? 꿈인가? 아니면 그들 사이 어디쯤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날 아침, 혹시 내가 죽은 게 아닌가 하는 희한한 느낌 속에서 깨어났다.
책 전반에 걸쳐 이런 애매한 상황에 대한 정리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파편화되어있는가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부분 부분, 그것도 왜곡되고 분절된 기억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듯합니다. 겨우 책 후반부에서 육체의 소멸에 대해 자각하는 부분이 잠시 나옵니다. 아마도 화자인 주인공은 죽음의 경계 어디쯤 존재하고 있는 듯합니다.
내 육체를 구성하고 있던 물질은 한때 나를 닮았던 한 영혼에게 거처를 제공해준 셈이다. 그러나 이제 나를 이루고 있는 물질은 다른 임무를 갖게 되었다.
소설은 우리가 시간, 공간, 이야기, 심지어는 이름까지, 규정된 모든 것에 대해 회의할 수 있게 합니다. 예측가능한 것을 좋아하고 불확실한 것을 싫어하는 인간의 본능이 만들어낸 '개념'이라는 것들이 거꾸로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상에선 인식조차 못하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부분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게 하는 시스 누테붐의 발상이 멋집니다.
우리는 무언가에 자신을 붙들어두기 위해 많은 것들을 고안해냈다. 이름, 시간, 치수, 이야기 등등. 그러나 나를 그저 내버려 두기 바란다. 나는 나만의 습관을 가졌을 뿐이다.
시스 누테붐은 이 책에 대해 "암스테르담에서 죽은 한 남자, 그 짧은 순간 자신의 전 생애가 눈앞을 지나간다. 이것이 소설의 요지"라는 인터뷰를 했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뭔가 정리되지 않는, 약간 어지러운, 줄거리를 잡는 것에 혼란을 겪게 되는데 죽음을 건너가는 순간을 묘사한 것이라면 아직 살아있는 우리가 편하게 받아들이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2023.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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