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여름의 책 Sommarbokenㅣ토베 얀손, 성장 소설 (민음사)
뭐 보고 있어? 고양이랑 살다보면 가끔 그 집중력에 놀랄 때가 있습니다. 다콩이도 뭔가 하나 눈에 들어오면 호기심이 다 채워질 때까지 쳐다보는데 불러도 돌아볼 줄 모릅니다. 창 밖에 거미가 집 짓는 모습을 구경 중인데 한쪽 귀는 제 쪽으로 향해있네요. 집사가 뭐 하는지는 궁금한가 봅니다. 새끼 때 길 생활하며 다친 발가락, 다리, 왼쪽눈이 오늘따라 더 눈에 들어오네요. 호기심 많은 성격 탓에 상처는 많지만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제 고양이입니다.
무민(Moomin)을 세상에 소개한 핀란드 작가 토베 얀손(Tove Jansson, 1914-2001)의 동화 같은 소설 <여름의 책, Sommarboken>입니다. 주인공은 할머니와 손녀 소피아, 여름날을 함께 보내며 할머니의 지혜와 사랑으로 커가는 소피아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피아는 어린아이답게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게 많습니다.
"사랑은 참 이상해" 소피아가 말했다. "사랑은 줄수록 돌려받지 못해." "정말 그래" 할머니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계속 사랑해야지." 소피아가 위협하듯이 말했다. "더욱더 많이 사랑해야지."
"할머니." 소피아가 말했다. "가끔은 내가 마페를 미워한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마페를 사랑할 힘이 없는데, 그래도 계속 마페 생각만 나."
_「고양이」 본문 가운데
고양이와 같이 사는 저로서는 이 짧은 이야기 속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고양이 친구가 처음인 어린 소피아에게 고양이 마페는 서운한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 그러면서도 보고싶고 좋아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게 하는 오묘한 존재입니다.
삽화가 책의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나무로 지은 오두막, 소피아의 방은 지붕 바로 아래 다락방입니다. 아버지는 일을 가고 어머니는 돌아가신 소피아에게 할머니는 친구이자 엄마이자 할머니입니다. 할머니 역시 소파아를 그렇게 대합니다. 할머니는 어린 소피아에게 자연스럽게 노인의 삶과 생각도 공유합니다.
할머니가 말했다. "잠이 안 와. 슬픈 일들이 생각나서." (...) "내가 보기에는 모든 일들이 점점 작아지고 멀어지고 전에는 그렇게 즐거웠던 일들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사소해지는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하면 참 허무한 일이지. 어쨌건 이야기는 할 수 있어."
_「여름의 책」 본문 가운데
냄새는 중요하다. 냄새는 경험한 모든 일들을 기억나게 하며, 추억과 포근함을 가득 품고 있다. 가운에서는 바다 냄새와 연기 냄새가 났지만..
_「가운」 본문 가운데
엄마를 잃고 아빠는 일하느라 바쁜 소피아에게 부모님과 관련한 냄새는 중요한 매개입니다. 아버지의 가운에서 나는 바다 냄새와 연기 냄새가 소피아에게 어떤 기억을 가져다주는 걸까요. 냄새는 일순간 어떤 장소로 우리를 데려다주는 역할을 합니다. 녹음할 수도, 글로 기록할 수도, 그림으로 그릴 수도 없는 독특한 감각인 후각은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에 의지해 작동합니다. 그래서 특정 냄새가 느껴지는 순간이 더 소중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소피아에게 할머니의 냄새도 언젠가 아스라이 애틋한 기억으로 남겠지요.
2023.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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