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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남자의 자리 La Placeㅣ아니 에르노, 아버지에 관한 자전적 소설 (1984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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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남자의 자리 La Placeㅣ아니 에르노, 아버지에 관한 자전적 소설 (1984BOOKS)


다콩이가 가끔 묘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습니다. 저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웃하며 '읭 뭘봐. 왜봐.' 하는 듯한 표정입니다. 뭔가 높은 차원의 깨달음을 얻은 듯 한 모습이기도 하고, 제 눈엔 뭐 그저 귀엽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1961)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에서 고양이는 50대 인간 수준의 통찰력을 가졌다고 하던데 그래서 늘 앞에서 헤벌쭉 웃고 있는 저를 저런 표정으로 내려다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헤헤 까꿍.

 

 

지난해 202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 1940)의 책을 한 권 빌려왔습니다. 노벨 문학상, 언젠가 한국인 작가가 이 상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네요. 한국 문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서구권 문학상을 욕심내는 것이 의미 없다 할지라도 말이죠.

 

책의 제목은 <La Place>,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소설로 한국어 번역본은 <남자의 자리> 또는 <아버지의 자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자전적 소설의 형식을 하고 있지만 사실 어디까지가 논픽션이고 어디서부터가 픽션인지 독자는 물론 작가 아니 에르노 역시 알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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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화자인 주인공이 교사 시험에 합격하고 정확히 두 달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납니다. 장례를 치르는 과정 전반에서 화자는 오열이나 비명도 없이 무덤덤하게 진행되는 모든 절차를 지켜봅니다. 아버지의 죽음에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렇게 담담하게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그(아버지)'와의 사이(La Place)에 대해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아버지와 그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사춘기 시절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이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다... 나는 곧바로 그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중간쯤에 이르자 거부감이 찾아왔다. 

 

 

'나'의 어린 시절은 풍족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몸살도 걸어 다니면서 앓아야 할 만큼 바쁘게 일하며 가족들을 부양합니다. 형편이 조금씩 나아졌지만 그 여유에도 긴장감이 늘 묻어났습니다. 피곤에 찌든 아버지의 불평이 '나'의 어린 시절에 남은 아버지와의 기억에 적잖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자란 주인공은 교사가 되면서 이제 꽤 괜찮은 사회계층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부유하지 않은 어린 시절,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아버지, 그 아버지에 관해 쓴 글, 글을 마친 후 '나'는 이렇게 독백을 합니다. 

 

내가 교양 있는 부르주아의 세상으로 들어갈 때, 그 문턱에 두고 가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일을 마쳤다. 

 

아버지에 관한 글을 쓰던 중 거부감이 찾아온 이유를 이렇게 넌지시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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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나 불행에 대해 생각할 여유도 없을 만큼 '나'의 아버지는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열두 살에는 초등교육 수료증 준비반이 됐으나 할아버지는 그를 학교에서 빼내어 자신이 일하는 농장에 집어넣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버지를 더 이상 먹여 살릴 수는 없었다. "생각도 하지 않았어. 그땐 모두가 그랬으니까."

 

<La Place>가 <남자의 자리> 또는 <아버지의 자리>로 번역될 수 있었던 여러 사연 가운데 이 부분도 포함될 수 있을 듯합니다. 시대 상황에 따른 일반적인 생활상이 있습니다. '그땐 모두가 그랬으니까...' 지금 우리 시대에는 어떤 삶의 모습이 '모두가 그랬으니까'라는 말로 일반화할 수 있을까요. 대체로 그런 모습은 어둡고 안타까운 면이 될 테지요. 

 

 

책을 다 읽고 나서 맨 앞으로 돌아가 첫 장에 적힌 프랑스 시인 장 주네(Jean Genet, 1910-1986)의 문장을 다시 읽어봅니다. 아버지의 빈자리에 아버지의 이야기를 채워 넣은 아니 에르노의 복잡한 심정을 이 문장으로 대신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감히 이렇게 설명해보려 한다.

글쓰기란 우리가 배신했을 때 쓸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_ 장 주네(Jean Genet)


2023.9.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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