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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살인자의 기억법ㅣ김영하, 촌철살인에 능한 살인마 (복복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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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살인자의 기억법ㅣ김영하, 촌철살인에 능한 살인마 (복복서가)


김영하 작가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입니다. 초판은 2013년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고 판권 만료 후 2020년 복복서가에서 제가 읽은 이 판본이 나왔습니다. 2017년에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한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머리가 복잡하던 어느 날 잠들기 전 침대에 앉아 '한 번 읽어볼까..'하고 넘긴 책장이 순식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어갑니다. 단막 단막 주인공의 의식 흐름대로 써 내려간 듯 특이한 구성입니다. 짧게 끊어 쓴 독특한 문체임에도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모를 만큼 빠르고 흡인력 있는 이야기 전개에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습니다. 다 읽고 나서는 역시, 김영하 작가 작품 특유의 유쾌하지 않은 잔상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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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책은 살인자이자 70대 치매 노인인 김병수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됩니다. 주인공의 이야기는 파편적인 듯 하지만 탄탄한 구성으로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면 그의 말을 어디서부터 믿어야 할지 어디까지가 제정신으로 쓴 기록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릅니다. 25년 전쯤 살인하는 일을 그만두었다고는 하지만 그것 역시 사실인지 알 수 없습니다. 재미있는 건 김병수는 자기 나름의 철학으로 똘똘 뭉친, 나름의 성찰로 촌철살인 하듯 말하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이 독자로 하여금 치매 환자이지만 의심 없이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책을 적어도 두 번은 읽게 된다고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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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과 죄책감에 대한 김병수의 말에 사이코패스적인 섬뜩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여기에도 촌철살인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타인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죄책감은 있으나 남부끄러운 줄 모르는 수치를 모르는 자들을 향한 찌를 듯 냉철한 사유, 김병수는 무척이나 지능이 높은 사람입니다.  

 

죄책감은 기준이 타인에게, 자기 바깥에 있다. 남부끄럽다는 것. 죄책감은 있으나 수치는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타인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수치는 느끼지만 죄책감은 없다. 

 

김영하 작가는 이 책 <살인자의 기억법>을 두고 "이것은 내 소설이다. 내가 써야 한다. 나밖에 쓸 수 없다."라는 애정 어린 평을 합니다. 하루에 한두 문장 밖에 쓰지 못한, 유난히 진도가 나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말합니다. 이토록 어렵게 쓰인 책이니 독자들에게 빠른 속도로 쉽게 읽히는 건 당연한 논리입니다.     

 

 

"놈은 혹시 은희를 노리고 있는 것일까."

 

촌철살인에 능한 살인마, 살인에서 은퇴한 70대 치매 노인, 그의 말 가운데 과연 무엇을 믿을 것인가. 김영하 작가의 소설에는 늘 예측을 벗어나는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2023.9.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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