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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고슴도치의 소원ㅣ톤 텔레헨, 어른을 위한 동화, 관계에 관하여 (아르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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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고슴도치의 소원ㅣ톤 텔레헨, 어른을 위한 동화, 관계에 관하여 (아르떼)


그림책 같기도 하고 소설책 같기도 한 어른들을 위한 동화 <고슴도치의 소원>입니다. 저자인 네덜란드의 동화작가 톤 텔레헨(Toon Tellegen, 1941)은 의사로 일하면서 시를 쓰고 동화를 쓰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다람쥐, 코끼리, 고슴도치 등 동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우화를 많이 썼으며 동화이긴 하지만 대부분 성인들의 공감을 살만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고슴도치의 소원>은 가까이 하면 가시 때문에 상대를 다치게 하고 멀리 떨어지면 얼어 죽는 고슴도치의 딜레마를 통해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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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소원>에 나오는 고슴도치는 다른 동물들을 집에 초대하고 싶은 마음과 혼자 있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자신이 다른 동물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자신의 초대를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을까, 초대를 하고 나서 마음이 바뀌지 않을까, 끊임없이 마음을 쓰다가 결국 초대장을 넣어둡니다. 얼마나 생각을 많이 했는지 꿈에서도 여러 번 동물 친구들을 초대해 곤란한 상황을 겪는 일이 반복됩니다. 

 

보고 싶은 동물들에게

모두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안 와도 괜찮아

 

함께 하고 싶은 마음과 홀로 있고 싶은 마음, 우리 안에도 공존하는 마음입니다. 고슴도치의 편지에서 나 자신이 보여 빙긋이 웃음이 납니다. 보고 싶고 초대하고 싶지만, 안 와도 괜찮아. 

 

 

고슴도치의 머릿 속에서 이런 일은 하루에도 백 번씩 일어납니다. 생각이 자꾸 바뀌고,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는 다른 동물들의 반응을 상상하며 괴로워하기까지 합니다. <고슴도치의 소원>에 등장하는 고슴도치는 제가 봐도 답답한데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 속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뭔가 변화의 지점이 있을까 해서 페이지를 넘기는데 200페이지에 달하는 책 한 권이 모두 이런 흐름입니다. 딜레마에 빠진 고슴도치의 변덕스러운 마음과 상상 속에서 펼쳐지는 다른 동물과의 이야기들, 지루할 법도 한데 그 속에 잔잔한 재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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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지 않은 초대장을 받은 장수하늘소의 답장까지 고슴도치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냅니다. 답장에는 고슴도치가 듣고 싶지 않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이 함께 들어있습니다. 

 

고슴도치에게

나는 못 가

...

그냥 지금 네 모습 그대로 있는 건 어때?

외롭고, 아무것도 확신 못하고, 조금은 불안한 대로

그렇더라도 조금은 행복하지?

 

고슴도치는 어쩌면 관계 맺기를 주저하고 상상속에서만 친구를 만나는 자기 모습을 꽤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스스로에게 조심스럽게 권하고 있습니다. 초대장을 받지도 못한 장수하늘소를 일부러 불러와서 까지 말이죠. 

 

 

이제 고슴도치는 주인 전용 방을 만들어 다른 동물들을 초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합니다. 집에 온 방문객들을 두고 고슴도치는 그 방에 들어가 이렇게 응대하기만 하면 됩니다.

 

"지금 나갈게!" 

"기다려!" 

 

그리고 고슴도치는 초대한 손님들이 돌아갈 때까지 주인 전용 방에서 나오지 않고 방문객이 모두 가고 나면 거실로 나와 이리저리 거닐겠다는 심산입니다. 동물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고슴도치가 생각해 낸 귀여운 계획입니다. 고슴도치의 MBTI가 I 유형인 건 틀림없어 보입니다. 

 

 

관계와 단절 속에 고민을 반복하던 고슴도치는 이제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해 의문을 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모두는 누구일까.. 그러니까 내 말은.. 그러다 문득 이제 분명히 알겠다는 듯 아무도 자기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떠올립니다. 바닥을 쓸고 겨우내 먹을 양식을 확인하고 겨울잠을 준비합니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다람쥐가 찾아왔습니다. 그저 고슴도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찾아왔다고 합니다. 아끼던 엉겅퀴 꿀을 대접하고 다람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고슴도치는 누군가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겨울잠에 들어가는 고슴도치에게 다람쥐는 관계와 만남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떠납니다. 

 

정말 즐거웠어. 

조만간 또 만나자!

 

친구가 어디엔가 있다, 그러나 만날 필요도 찾아갈 필요도 없다. 저자 톤 텔레헨은 필요에 의해 사람을 사귀고 만나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별다른 용건없이 친구를 만나고 함께 있는 것으로 서로에게 기쁨이 될 때 그 만남이 아름다운 게 아닐까 우리에게 묻습니다. 인생의 겨울을 눈앞에 둔 시기에 "정말 즐거웠어, 조만간 또 만나자!"라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 봅니다.

 

고슴도치는 피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주저한 것이지 관계 자체를 두려워한 건 아니었다는 걸 책의 마지막에서야 알게 됩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동화입니다. 


2023.9.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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