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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나라 없는 사람ㅣ커트 보니것, 유고집, 푸른행성 지구를 지켜라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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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라 없는 사람ㅣ커트 보니것, 유고집, 푸른행성 지구를 지켜라 (문학동네)


우연히 또 보물같은 책을 발견했습니다.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 1922-2007)의  <나라 없는 사람, A Man without a Country> 입니다. 책 제목만 보고 난민 지위를 가진 작가의 자서전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페이지를 넘기는데 몇 문장만 읽었는데도 저자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되면 거꾸로 저자에 대해 먼저 구글링 해보게 됩니다. 위트 있고 담백한 문체가 젊은 작가의 것인 줄 알았는데 이 책 <나라 없는 사람(2005)>은 84세 일기로 2007년에 사망한 저자의 유고집입니다. 커티 보니것이 사고로 죽었으니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은 아닙니다. 

 

80대에 이런 위트와 감각을 유지하려면 저자는 얼마나 많은 생의 풍파와 고초를 겪은 것일까 그의 생애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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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은 1922년 미국에서 태어난 독일계 미국인입니다. 대학 재학시절 반전적인 에세이를 써 낸 것을 이유로 징계를 당하고 1943년 자진 입대를 합니다. 복무 중 휴가 때 집에 갔다가 어머니가 자살한 것을 알게 됩니다. 이후 전투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드레스덴(Dresden)에 수용되고 이때 드레스덴 폭격으로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때 사건이 소설 <제5도살장, Slaughterhouse-Five>의 모티브가 됩니다. 전쟁 후 시카고 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책을 쓰기 시작합니다. 누나인 엘리스 보니것과 그의 남편이 하루 차이로 사망하면서 조카 셋을 입양해 키우게 됩니다. 1997년에는 형이 암 투병 중 사망하고, 그는 2007년 자택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사망합니다. 

 

 

전쟁과 포로의 경험, 어머니의 자살, 형제의 이른 죽음과 조카 입양, 자신의 이혼까지, 커트 보니것의 84년 생애는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너무나 고단했을 것 같은데 그는 그 속에서 유머와 위트를 놓치지 않았고 지구와 환경에 대한 시각도 갖춘 성숙한 삶을 살았습니다. 8년 전쯤 출장차 들른 독일 드레스덴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현지인 직원이 드레스덴의 꿀벌색 벽돌 사이사이 낀 검은색 돌을 가리키며 드레스덴 폭격(Bombing of Dresden) 때 잔해들을 수습해 재건에 사용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흘려들었는데 드레스덴 폭격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경험을 소설로 옮긴 <제5도살장>도 읽어봐야겠습니다. 

 

 

또한 커트 보니것은 우리가 사는 지구의 미래에 관해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자연을 지구를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며 사는지, 그리고 미래의 지구에 살아갈 후손들의 세계에 얼마나 무심한가에 관해서. 

 

우리 인간은 화석연료를 가지고 열역학 소란을 피우면서 불과 이백 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살 수 있는 푸른 행성을 무참히 파괴해 왔다.. 인간은 정말로 한심한 실패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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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생각하는 문학작품별 그래프 분석법입니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이 부분을 봤는데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변신>을 그래프화한 걸 보고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시작과 끝, 카프카의 작품 속 주인공 그레고르는 ㅡ카프카의 인생이라고 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듯합니다ㅡ 시작부터 불운의 밑바닥에서 출발해 끝까지 가기도 전에 이미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대의 불운 구덩이로 빠지고 맙니다. 

 

매력도 없고 잘 생기지도 않은 젊은 남자가 있다. 그에겐 쌀쌀맞은 가족과 승진 가능성이 털끝만큼도 없는 고된 직업이 있다. 봉급은 쥐꼬리만 해서 애인과 춤을 추러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 맥주 한잔 마실 엄두도 내지 못한다. 어느날 아침 출근하기 위해 잠에서 깨어나보니 그의 몸이 바퀴벌레로 변해 있다.

 

그레고르의 삶이 이정도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그래프에 올려놓고 보니 무한대의 불운이네요. 커트 보니것의 작품 평가 방법은 꽤나 유용한 면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레고르 같은 인물들에겐 너무 모질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커트 보니것이 그림이나 음악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예술에 무척 호의적인 사람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소설이나 에세이도 예술이니 그 역시 예술가로서 살다 갔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삶을 그나마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예술을 언급하며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생계를 삼진 말 것을 경고합니다. 뭐든 밥벌이가 되면 가치가 퇴색되기 마련입니다.

 

예술을 할 땐 최선을 다하라. 엄청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았는가! 

 

책을 통해 누군가(저자)를 만나는 경험은 회를 더할수록 기쁘고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글을 남겨줘서, 다음 생을 살아갈 누군가(나)에게 말을 건네줘서 감사합니다. 


2023.8.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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