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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왜냐고 묻지 않는 삶ㅣ알렉상드르 졸리앙, 한국에 사는 스위스 철학자 (인터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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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왜냐고 묻지 않는 삶ㅣ알렉상드르 졸리앙, 한국에 사는 스위스 철학자 (인터하우스)


어느날 유튜브에서 한국에 사는 스위스 철학자의 하루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알렉상드르 졸리앙(Alexandre Jollien, 1975)이라는 분인데 아내와 세 아이들과 함께 얼마간 한국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태어나면서 입은 장애로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데 그래서 간혹 사람들이 졸리앙이 걷는 모습을 보고 술 취한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 다큐멘터리 속에서 보이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단조롭기까지 한 그의 하루가 저를 차분하게 만듭니다. 문득 성숙한 삶이란 단순하고 여유로운 삶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큐멘터리 한 편에 스위스에서 온 철학자에게 매료되어 그의 책을 찾아봅니다. <왜냐고 묻지 않는 삶>, 책의 제목에서 크리스천의 향기가 난다.. 했는데 역시나 그렇습니다. 그의 단순하고 여유로운 삶은 깊은 믿음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믿음이란 어쩌면 평화나 치유, 행복 같은 것에 그만 매달리고 왜냐는 물음 없이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 나가는 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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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건 졸리앙이 한국에 온 이유는 불교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서인데 그런 그를 '양다리' 신앙이라 비난하는 일부 기독교 신자들에 맞서 지혜로운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합니다. "그래? 거 참 든든하겠네! 내가 보기엔 전혀 걱정할 필요 없겠는걸! 부처님도 예수님도 당신을 보살펴주실테니까 말이야." 미처 생각하지 못한 참신하고 멋진 생각입니다.  

 

 

이 책 <왜냐고 묻지 않는 삶>에는 알렉상드르 졸리앙의 짧은 에세이가 수십편 실려있습니다. 졸리앙의 문장에는 그가 이 책을 쓸 당시 겨우 30대 중반이었다는 걸 믿을 수 없을만큼 깊이있는 성찰이 담겨있습니다. 아마도 그 깊이 아래에는 진리를 찾고자 분투하는 철학자의 괴로움과 애타는 심정이 켜켜이 쌓여있을테지요. 좋은 문장이 셀 수 없이 많아 수첩 여러 페이지에 적고 또 적습니다. 

 

신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나 자신으로부터, 남의 평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두려움과 분노, 정념과 에고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관조한다는 것은 나 없는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졸리앙이 말하는 왜냐고 묻지 않는 삶이란 믿음으로 사는 삶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고 묻지 않는 삶의 특징으로 바로 서두에서 언급한 단순함과 여유로움을 들 수 있겠네요. 마치 여러 갈래의 깨달음이 심겨진 오랜 고전을 읽는 기분입니다. 

 

 

철학책이 눈에 들어오는 때는 대체로 마음에 번뇌가 많을 때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철학이나 신학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어릴때부터 소위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 철학을 좋아했는데 지금에서야 그 뜬구름이 진정한 삶의 진리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알렉상드르 졸리앙은 출간한 책으로 유럽에서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더 많은 괴로움과 번뇌에 시달렸던 것 같습니다. 출세라는 것이 사람의 영혼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 것인지 모를리 없는 그가 한국으로 온 가족을 데리고 온 것도 그 때문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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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번뇌부자인 저로서는 졸리앙의 글들이 한여름 소나기처럼 반갑습니다. 요즘 꽂힌 단어가 자유와 용기인데 그래서인지 자유와 용기에 관한 문장들에 특히 시선이 오래 머뭅니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닫는 것, 그것은 이미 자유로움을 뜻한다.. 꿋꿋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과민반응하지 않고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다. 

 

 

오랜기간 질병에 시달려 온 사람이라면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 그 질병이 장애나 통증으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중증 뇌성마비를 가진 졸리앙이 질병과 치유에 관해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해왔다는 것을 감히 추측해볼 수 있는데 그런 그가 이런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나를 치유해주는 것이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다. 치유되려는 생각으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치유되고 있다. 

 

성경 속 인물 가운데 바울 사도가 질병으로 고통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낫게 해달라고 오랜시간 끈질기게 기도합니다. 결국 그의 질병은 치유되지 못했지만 더이상 낫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치유되려는 생각으로부터 치유된 것입니다. 졸리앙이 저 문장을 쓸 때까지 얼마나 끈질기게 기도했을지.. 

 

이제 졸리앙은 가족들과 다시 스위스로 돌아갔습니다. 여전히 책을 쓰고 강연을 하고 여러 매체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그가 한국에 살았던 몇 년간의 기억이 그의 철학에도 보탬이 됐겠지요.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건 특히나 철학자에게 낯섦은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니까요. 앞으로 만나게 될 그의 책도 기대가 됩니다. 


2023.8.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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