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훔쳐라 아티스트처럼 Steal like an Artistㅣ오스틴 클레온, 아이디어 얻는 법 (중앙북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 특히 약간의 무기력증에 빠진 예술가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책입니다. 한국어 번역본이긴 하지만 작가인 오스틴 클레온(Austin Kleon, 1983)의 문체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에너지가 있습니다. 책의 제목은 <훔쳐라 아트스트처럼(Steal like an Artist)>입니다. 예술가적 감각이 묻어나는 참신한 디자인, 귀여운 글씨 폰트, 가로가 긴 책 사이즈까지 개성이 넘칩니다. 역시 책 디자인에도 콘텐츠가 담깁니다.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듯 오스틴 클레온 역시 직업을 한 두개로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공공도서관, 디지털 광고 대행사 등에서 일하며 여러 창의적인 일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의 문체에서 느껴지는 인싸의 기질은 생각건대 다양한 사회생활과 폭넓은 인간관계 덕분인 듯합니다.
목차만 봐도 동기부여가 되는 듯합니다.
- 그냥 시작해라.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 당신이 써라. 당신이 읽고 싶은 책
- 두 손을 써라. 아날로그 도구들을 써라
- 곁다리 작업이나 취미가 중요하다
- 멋진 작업을 하고 사람들과 공유하라
- 지리적 한계는 더 이상 없다 세계는 작은 마을이다
- 질릴만큼 꾸준히 하라. 이것이 작품 완성의 유일한 길이다
- 크리에이티브는 빼기다
제게 그림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할 땐 재료를 넉넉하게 준비하거나 고급 재료를 쓰지 말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결핍이 창의성을 끌어낸다는 것인데 오스틴 클레온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사람을 힘빠지게 하거나 공포스럽게 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꽉 막혀버린 상태를 극복하는 방법은 스스로 선을 긋는 것이다. 크리에이티브한 일에 있어서 '제한'은 '자유'를 의미한다.
그래서 당시 제가 다니던 미술 스튜디오 한쪽 벽면에는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 초상화가 있었고 연설 한 문장이 쓰여있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창의적인 일을 하는 작가가 출퇴근하는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한 오스틴 클레온의 견해에도 일면 동의합니다.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규칙적인 생활과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적당한 일자리(직장)는 창의성을 끌어내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찾는게 쉽진 않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적당한 보수, 적당한 업무 강도, 적당한 시간, 그런 일을 구하려면 자신이 가진 능력도 중요하겠지요.
적당한 보수를 받고, 구토 나올 정도로까지 바쁘지 않으면서, 남는 시간에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일자리.. 쉽진 않겠지만, 있긴 있다.
환경을 바꾸는 것은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심지어 주기적으로 꼭 필요한 일입니다. 오스틴 클레온은 통찰력과 거리(집으로 부터의 거리)는 비례한다며 가끔 비행기를 타고 멀리 떠날 것을 제안합니다. 집단 문화라는 것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한국인들이 가진 사고방식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해외에서, 가능하다면 개발도상국에서 일할 경험을 얻을 수 있다면 지금껏 내가 해 왔던 생각과 판이하게 다른 사고방식과 색다른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창의력을 끌어올리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호기심이 왕성해 여러 취미생활과 관심사를 가진, 그래서 작품들도 늘 제각각인 작가들에게 격려가 될만한 내용도 있습니다. 혹자는 자기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의 일관성(고유한 스타일)은 '작가'입니다. 작품들 사이의 일관성뿐만 아니라 작품 내에서도 얘기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하나의 캔버스에 추상화와 사실주의적인 구상화가 함께 들어있다면 그것 역시 모두가 한 작가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그 자체로 온전한 스타일이 됩니다. 일관성에 구속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당신의 모든 작품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특징은 전부 당신이 만들었다는 점이다.
내 마음을 흔드는 작품이나 작가가 있다면 그들을 추척 연구해 볼 것을 제안하는 파트가 있는데 이유가 흥미롭습니다. 나만의 '크리에이티브 가계도'의 어디쯤에 내가 위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작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업할 때 덜 외롭고 든든하기까지 하다고 하니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한 일입니다. 그들이 나를 가계도에 넣어주건 말건 허락 여부에 상관없이 내가 그들의 계보에 들어가 앉는 재미난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거장들의 좋은 점은 그들이 제자가 되려는 당신을 절대 거부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결과물이 마치 자기 자식 같습니다. 쏟아부은 세월은 보지 않고 작품을 평가하는 것을 듣는 일은 때로 유쾌하지 않은 경험입니다. 오스틴 클레온은 그런 상황에 익숙해지라고 조언합니다. 그리고 작품활동을 하느라 바빠 그런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도록 하는 게 요령이라고 말합니다. 너무 진지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내용들이 책과 저자에 대한 호감을 키웁니다. 책을 읽는 동안 몇 가지 제안사항은 바로 실천에 옮깁니다. 좋은 책을 만나서 기쁜 하루입니다.
2023.8. 씀.
'[책] 소설 시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왜냐고 묻지 않는 삶ㅣ알렉상드르 졸리앙, 한국에 사는 스위스 철학자 (인터하우스) (2) | 2023.08.28 |
---|---|
[책] 서툰 감정 The Emotional Compassㅣ일자 샌드, 감정 뒤에 숨은 진실 (다산북스) (0) | 2023.08.25 |
[책] 크리톤 Kritonㅣ플라톤, 소크라테스와의 대화, 이기백 옮김 (EJB이제이북스) (3) | 2023.08.23 |
[책]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ㅣ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의 명문장 (굿모닝북스) (1) | 2023.08.22 |
[책] 맡겨진 소녀 Fosterㅣ클레어 키건, 영화 '말 없는 소녀' 원작 (다산책방) (0) | 2023.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