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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흰 The Elegy of Whitenessㅣ한강 Han Kang,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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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흰 The Elegy of Whitenessㅣ한강 Han Kang,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시집이나 산문집 같이 얇고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단정한 책입니다. 작가의 이미지를 빼닮은 책이라 독립출판물 같기도 합니다. 한강 작가의 소설 <흰, The Elegy of Whiteness>입니다.

 

저자는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2007)>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맨 부커상*을 수상한 작가입니다. 소설 <흰> 역시 2018년 맨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작에 오른 작품입니다. 영어 제목은 The Elegy of Whiteness, '순백의 애가'. 한국어 원제보다는 영어 제목이 책의 내용을 더 직관적으로 드러내줍니다.

 

* 맨 부커상(Man Booker Prize): 1969년 영국의 부커사가 제정한 문학상. 노벨문학상, 공쿠르 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 

 

 

흰색에 관한 이야기, 작가가 이 책을 완성하는 데 3년여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공을 많이 들인 작품입니다. 1장 첫 번째 이야기는 한강 작가 본인의 이야기인 듯도 하고, 소설 속 화자의 독백 같기도 합니다. 어딘가 모호한 면이 있지만 그게 더 마음에 듭니다. (작가 또는 화자가) 이 책을 꼭 쓰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책에 실린 65편의 짧은 에세이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시처럼 밀도 있는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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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크게 세 개의 장으로 나뉩니다.  

 

흰색에 관한 '나'의 이야기

흰색에 관한 '그녀(언니)'의 이야기 

'모든 흰'색에 관한 이야기 

 

1장 '나'에 나오는 <문> 이야기에 '핏자국 같은 녹물'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핏자국 같은 녹물.. 흠집이 생긴 쇠에 녹이 잘 생긴다는 걸 생각하면 이 표현이 얼마나 탁월한지 놀라울따름입니다. 언뜻 핏자국 같은 눈물로도 읽히네요. 

 

<문>의 마지막 부분은 그림을 그리듯 섬세한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눈 앞에 멍하게 하늘을 응시하는 주인공과 그 주변 풍경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두 손에 페인트 통과 붓을 들고 엉거주춤 서서, 수백 개의 깃털을 펼친 것처럼 천천히 낙하하는 눈송이들의 움직임을 나는 멍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어떠한 흰 것 중 <달떡>편을 읽다가 '달떡'이라는 단어를 찾아봅니다. 실제 있는 떡 이름입니다. 동그랗고 납작하게 빚은 흰 떡이네요. '달떡처럼 희고 어여뻤던 아기', 아기의 얼굴을 묘사할 때 비유로 들기에 아주 적합한 것 같습니다. 태어난 지 2시간 만에 엄마 품에서 숨을 거둔 화자의 '언니' 이야기입니다.

 

어린 짐승들 중에서도 가장 무력한 짐승. 달떡처럼 희고 어여뻤던 아기. 그이가 죽은 자리에 내가 태어나 자랐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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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자마다 네 발로 비틀비틀 서서 잠시 후 걷는 송아지를 생각하면 아기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오랜 시간의 보살핌과 양육이 필요한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나는 모르는 형제ㅡ그것도 태어나자마자 죽은ㅡ 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요. 적어도 부모의 전적인 사랑과 기쁨을 먹고 자라진 못할 것 같습니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말이죠. 화자의 근원적 슬픔이 느껴집니다.

 

 

3장 '모든 흰' 중 <작별>에서 '나'는 '그녀(언니)'와 만납니다. 어쩌면 나의 언니가 되었을 생명, 그 언니가 죽지 않았다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또다른 생명, 둘은 결코 이 세상에 함께 존재할 수 없는 얄궂은 운명이었나 봅니다. 그들이 작별 인사를 나눕니다. 그녀가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결심한 듯 화자는 '그녀'에게 말을 건넵니다. 

 

백지에 힘껏 눌러쓴다.

그것만이 최선의 작별의 말이라고 믿는다.

죽지말아요. 살아가요. 

 

나를 통해 언니가 살아가길 바라는, '그녀'가 생을 살아가길 바라는 화자의 바람이 '모든 흰'에서 이루어집니다. 잊지 않고,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앞으로도 살아갈 '나' 속 어딘가에 '그녀'가 살아있을 것만 같습니다.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글은 어렵지만 매력적입니다. 단순하고 명쾌하지 않지만 모호하고 희뿌연 속에서 제 나름의 이야기 한 갈래를 뽑아냅니다.   


2023.8.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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