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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 생활 봉사

(258) 독수리 봉 Pico aguila까지 4시간 등산, 치카케 국립공원 Chicaqueㅣ콜롬비아 Colombia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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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독수리 봉 Pico aguila까지 4시간 등산, 치카케 국립공원 Chicaqueㅣ콜롬비아 Colombia 여행


갈수록 바닥은 더 미끄럽고 고르지 않은 산길에 진흙 구덩이도 곳곳에 있어 신발과 바짓단, 엉덩이, 양손까지 이미 흙으로 엉망입니다. 그런데 무슨 마음인지 되돌아갈 생각이 아직은 없습니다. 깊은 정글에 들어온 듯 신비로운 분위기입니다. 한 번씩 사진 찍으려고 점퍼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면 액정에 습기가 차서 바지에 닦으면 바지도 축축, 난감합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특이한 모양의 나비, 벌처럼 웽웽거리는 작은 새, 토끼처럼 뛰어다니는 꼬리 없는 다람쥐,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생명체들이 숲 속에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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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탐방로 Senderos Ecológicos> 라고 이름 붙여진 정글을 빠져나오니 벤치가 있는 대피소가 나오고 안전요원 한 분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매표소가 있는 A(Porteria) 지점에서 현재 중간 대피소까지 1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거리상으로는 1.5km, 고도상으로는 300m쯤 내려왔습니다. 산 아래까지 내려가면 경치도 좋고 절벽도 조망할 수 있다고 1시간 정도만 더 내려가면 된다고 알려줍니다. 그러고 싶지만 다시 돌아올 걸 생각하니 엄두가 안 나네요.  



되돌아갈까 하다가 독수리 봉우리 D(Pico Aguila)까지 다녀와보기로 합니다. 거리상으로는 0.74km 밖에 안 되는데 안전요원이 길이 많이 험하다고 '조심하라(¡Mucho cuidado!)'고 당부합니다. 어디서 왔냐, 호흡 곤란 증세는 없냐, 어지럽거나 속이 불편하진 않냐, 물이랑 초콜릿은 갖고 있냐 등등 체크하더니 다시 한번 조심하라고 말하며 보내줍니다. 길이 좁고 고르지 않은데다 진흙으로 미끄럽고 옆은 절벽이라 나무며 바위며 노끈이며 손에 잡히는 대로 잡으며 갑니다. 



숨도 차고 땀인지 습기인지 머리는 다 젖고 얼굴은 땀 범벅입니다. 평소 저 같으면 포기하고 돌아갔을 텐데 오늘은 무슨 오기인지 정상을 꼭 보겠다는 일념으로 꿋꿋하게(!) 갑니다. 0.14km, 거의 다 왔는데 길이 없어 보입니다. 화살표가 난 쪽은 절벽같이 보이는데.. 암벽 타기 해야 할 정도로 경사가 심하네요. 두 손으로 바위를 붙잡아가며 올라갑니다. 위쪽에서 사람 소리가 나서 올려다보니 '거의 다 왔어요 (¡Casi Casi!)' 하며 4명의 무리가 제가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독수리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입니다. 



좁은 바위절벽 틈을 지나 마지막 암벽등반을 하고나서야 독수리 봉우리 Pico Aguila에 올라섭니다. 사다리나 발 디딜만한 돌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바위틈을 붙잡고 겨우겨우 올라갑니다. 평소 운동도 잘 안 하고 초급자 등산로만 다니던 제겐 굉장한 도전이네요. 정상은 생각보다 좁고 사방이 가파른 절벽이라 한 번에 여러 사람이 올라오긴 어려워 보입니다. 구름이 완전히 걷히진 않았지만 봉우리 아래 펼쳐진 멋진 전망을 감상하는 데는 이 정도 날씨면 충분합니다.


독수리 여러마리가 봉우리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여유롭게 활공하고 있습니다. 바위산에 묶여 영원히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가 떠오르네요.



정상에 올라오니 제가 정말 기특하고 대단하게 느껴지면서 조금 다른 의미로 만감이 교차합니다. 독수리 봉우리가 2,290m이니까 매표소 보다 고도가 500m 낮고.. 이제 가파른 오르막 산길을 따라 돌아가는 일만 남았구나.. 하는 것입니다. 끙. 땀을 많이 흘린 데다 바람이 많이 부니 추워서 초콜릿 하나 입에 넣고 잠깐 앉았다 다시 내려갑니다. 절벽을 뒤로 내려가려다 각이 안 나와 앞으로 내려가는데 허벅지부터 허리까지 다 흙범벅이 됐습니다. 탈탈 털고 다시 길을 갑니다. 



이제 휴대폰도 백팩에 넣고 매표소가 있는 시작지점까지 입을 앙다물고 올라갑니다. 3시 버스를 타야하니 1시간 30분 안에 돌아가야 합니다. 중간 대피소에 도착하니 아까 만났던 안전요원이 또다시 제 컨디션 체크를 하고 심호흡을 여러 차례 시킵니다. 벤치에는 못 앉게 하네요. 다리 아픈데. 서서 심호흡만 하다가 다시 출발합니다.



잠깐씩만 쉬면서 1시간을 등산했더니 처음 이정표 발견한 곳까지 왔습니다. 습기와 땀에 머리카락은 착 달라붙고 얼굴은 빨갛고 다리는 후들거립니다.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매표소까지 0.44km, 거의 다왔습니다. 계단 끝에 노란색 메인게이트 건물이 보입니다. 산속에 사람도 없는데 호흡곤란이라도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는데 무사히 잘 도착했습니다. 게이트에서 직원 세 분이 헥헥거리며 올라오는 저를 보더니 손뼉 치며 환영해 줍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한쪽에 마련된 스트레칭 공간에서 놀란 근육들을 진정시킵니다. 



오전보다는 안개가 많이 걷혔습니다. 3시 10분전이라 버스 올 때까지 휴게소에 들어가 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안 오던 버스는 4시가 다돼서야 오더니 결국 5시에 퇴근하는 국립공원 직원들까지 다 태우고 출발합니다. 항의하듯 혼자 버스에 타고 있었는데 산책 중이던 암탉이 위로 방문을 왔습니다. 집에 가고 싶네요. 



노을 보면서 귀가합니다. 저녁 6시 조금 넘어 테레로스역 Estacion Terreros에 내려 뜨랜스밀레니오를 타고 집 근처에 내리니 7시가 다됐네요.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다리가 얼마나 아플까 기대됩니다. 날씨 좋을 때 치카케 국립공원 Parque natural Chicaque 종주하러 한번 더 가고 싶네요. 너무 좋았습니다. 



(전도서2:14)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릿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The wise have eyes in their heads, while the fool walks in the darkness; but I came to realize that the same fate overtakes them both. 


2023.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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