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소설 시 독후감

[책]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의 화신ㅣ김한민

728x90
반응형

 


[책]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의 화신ㅣ김한민 (아르떼arte)


포르투갈의 천재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를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역시 <불안의 책 Livro do Desassossego, 2015>을 통해 단번에 그의 팬이 되었습니다. 한 평론가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페르난두 페소아, 한 번이라도 그의 글을 읽었던 사람은 그 이름을 잊지 못한다."

 

요즘 사용되는 부캐라는 개념을 가장 먼저 작품활동에 접목시킨 인물이 포르투갈의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처럼 가벼운 개념은 아니지만요. 페소아는 일생동안 70여 명의 이명(가명) 작가로 살며 포르투갈어, 영어, 프랑스어로 시, 소설, 희곡, 평론에 걸친 독창적인 문학세계를 펼칩니다. 

 

반응형

 

이 책은 페소아에 관한 문학기행문입니다. 김한민 저자는 페소아를 제대로 만나기 위해 그가 살다 간 포르투갈 리스본(Lisbon, Portugal)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그와 동시대인으로 살며 페소아를 만나고, 느끼고, 경험합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언급한 '동시대인'이란 마치 깊은 사랑에 빠진 연인과도 같습니다. 

 

동시대인을 둔다는 것은 한 사람이 가졌을 법한 시선들에 익숙해지고, 나도 모르게 그를 대변하고 변호하며, 그에 관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자주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고 놀라는 일이다. _<프롤로그> 가운데 

 

어떤 위대한 인물을 사랑하게 되면 그가 살았던 곳에 가보고 싶은 법입니다. 저도 여행을 다니며 제가 좋아하는 작가와 사상가들의 생가나 묘지를 방문하고 그가 자주 갔던 카페나 공원에 가서 앉아있어 보곤 합니다. 그게 전부이긴 하지만 같은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깊은 확신은 깊이 없는 존재들에게만 있는 것이다. _페르난두 페소아, 1915년 칼럼

 

 

나는 글이 잘못 쓰인 종이 자체를 마치 사람인 양 증오하고, 잘못된 문법을 마치 때려 마땅한 사람인 양 혐오하고.. 그렇다, 철자법도 인격이기 때문이다. _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여행을 하다 보면 유독 마음을 붙잡는 도시가 있습니다. 포르투갈 리스본(Risbon, Portugal)이 그중 하나인데 지금도 가만히 떠올려보면 당시 지나간 골목, 발코니 줄에 널린 빨래, 창 밖을 응시하는 사람들, 미로처럼 얽힌 구시가 골목, 좁고 경사진 골목을 다니는 트램과 푸니쿨라, 타일로 장식한 바닥,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듯한 리스본 특유의 분위기가 생생합니다. 묘한 분위기,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리스본 특유의 매력은 페소아를 닮은 것 같습니다.

 

페소아라는 시, 지금도 리스본 시내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을 것 같은 시. 그 '불가해성'으로 말하자면 정말로 시를 닮았다. _<리스본 사람들 - 삶과 문학의 장소에서 만나다>

 

"I know not what tomorrow will bring.(나는 내일이 무엇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_죽기 하루 전날, 페소아가 남긴 마지막 문장

 

<에필로그>에 실린 페소아의 시 한 구절이 제 마음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을 공감해 줍니다. 1935년 9월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페소아가 죽기 2개월 전에 쓴 마지막 시입니다. 

 

네가 꿈꾸는 사람을 커다란 벽돌로 둘러싸라 / 그러고 나서 대문의 쇠창살을 통해 / 정원이 보이는 곳에다 가장 유쾌한 꽃들을 심어라 / 너란 사람도 그렇게 여기도록 / 아무도 안 보는 곳에는 아무것도 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처럼 화단을 꾸며라 / 남들에게 보여줄 너의 정원 / 눈길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그곳에 / 하지만 네가 너인 곳, 아무도 안 볼 곳에는 / 땅에서 나는 꽃들이 자라게 놔두어라 / 그리고 잡초들이 무성하게 놔두어라 / 너를 보호된 이중의 존재로 만들어라 / 그래서 보거나 응시하는 그 누구도 / 알 수 없도록, 너라는 정원 이상은 / 속마음 모를 겉치레 정원, / 그 뒤에 토박이꽃에 스치는 / 너무 초라해서 너조차 못 본 풀...

 

<페르난두 페소아,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의 화신>,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난 듯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회계사무원이라는 일이 페소아에게 사유를 선물해준 것처럼 우리에게도 각자에게 부여된 의무가 있겠지요. 무엇인가를 창조해내는 일은 고통을 거름으로 쓰는 게 분명해보입니다. 


2023.4. 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