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불안의 책 Livro do Desassossegoㅣ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 (문학동네)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는 포르투갈 태생의 문학가입니다. 이 책 <불안의 책, Livro do Desassossego>은 47세의 일기로 지병으로 사망한 저자 사후에 그의 글들을 모아 출판한 유고집입니다. 현재도 세상에 나오지 않은 엄청난 양의 원고가 있으며 분류와 출판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116. #361.
글을 쓴다는 것은 잊는 것이다. 문학은 인생을 무시하는 가장 유쾌한 방식이다. 음악은 마음을 달래고, 미술은 기운을 북돋고, 연극이나 무용 같은 행위 예술은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문학은 잠에 빠지듯 인생에서 멀어지게 한다.. 예술의 가치는 우리를 여기서 먼 곳으로 데려간다는 데 있다.
책은 전체 481개의 단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목에서 느껴지 듯 이 책은 페르난두 페소아가 일생동안 추구한 내면의 성찰과 감각적 사유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8.
한 번도 이해받기를 원한 적이 없다. 이해받는 것은 몸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사람들이 내 모습을 잘못 알고 있기를, 나를 알 수 없는 대상으로 여기며 예의 바르고 혼연스럽게 대하기를 원한다.
#130.
늘 똑같은 작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더 많이 생각하고 느꼈으니, 생각하는 내 능력은 많은 부분 회계사무원이라는 직업 덕분에 얻은 것이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글에는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5-1924)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심지어 두 문학가는 19세기 후반, 비슷한 시대를 살았습니다.
회계사무원으로 일하며 짧은 글을 수없이 써 내려간 페소아와 법률자문관으로 밥벌이하며 밤늦도록 글을 썼던 카프카는 인생도 닮았습니다.
#143.
나는 이루어질 리 만무하고 특별한 일을 꿈꾸는 사람보다 접근 가능하고 합리적이고 이루어질 법한 일을 꿈꾸는 이들이 더 딱하다. 원대한 꿈을 꾸는 사람은 좀 미쳐있기 때문에 자기가 꿈꾸는 것을 믿으며 행복해한다.. 불가능한 꿈은 단독적이고 독립적인 반면, 가능한 꿈은 삶에서 일어나는 우연적인 일들에 의존하게 된다.
이상의 <권태>를 읽으면서도 권태의 정확한 뜻을 고민하진 못 했습니다. 페르난두 페소아에게도 권태란 꽤 익숙한 정서였던 것 같습니다. 여러 페이지를 할애해 권태를 다루고 있는데 그 마음에 약간이라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하기엔 페소아의 권태는 더 깊고 광활해 보입니다.
#263. #381. #382. #418..
권태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권태를 이해시킬 만큼 권태를 잘 정의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권태는 세상에 대한 지루함이고 사는 것에 대한 불쾌함이며 살아온 것에 대한 피로함이다. 진정 모든 것의 끝없이 늘어지는 공허함을 온몸으로 겪는 자각이다.. 이제는 권태가 육체를 가진 상상 속 친구가 되어 나와 동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 존재의 본질적 불안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탐구하는 일은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런 삶을 살았기에 페소아와 카프카가 짧은 생을 살고 떠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를 가진 인간으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불안'이라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163.
행동하는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사고하는 인간에게 종속된다. 모든 일들의 가치는 해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는 것은 살아지는 것일 뿐,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이 그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다른 쪽으로 생각하면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에 의해 평가 되거나 자신의 삶이 해석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편으론 싫어한다는 것조차 이미 그 말에 종속되었다는 의미겠지요.
2023.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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