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루이스 앙헬 아랑고 도서관 Biblioteca Luis Ángel Arango, Lerner 서점, 라칸델라리아 La Candelaria (ft.철학자 한병철 ByungChul Han)
저도 책을 좋아하는데 저만큼이나 책을 좋아하는 콜롬비아인 친구(안젤리)가 있습니다. 안젤리는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했는데 제가 심리학 다음으로 좋아하는 분야가 철학이라 나눌 이야기가 많습니다. 11시에 라칸델라리아(La Candelaria)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친구는 콜롬비아인 답지 않게 5분 먼저 도착하고, 저는 한국사람 답지 않게 5분 지각입니다. 가톨릭(Católico)이 대부분인 콜롬비아이지만 안젤리는 저와 같은 그리스도인(Cristiana)입니다. 오래된 성경 주석 복사할 게 있다고 해서 근처 인쇄소에 들릅니다.
철학(filosofía)과 신학(teología)은 결이 같은 학문이라 철학자들 대부분이 종교학을 연구합니다. 안젤리가 성경 주석을 보고 또 보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인쇄소에 들렀다가 건너편 도서관(Biblioteca Luis Ángel Arango)에 갑니다. 콜롬비아에서 굉장히 중요한 도서관인데 저는 늘 근처만 둘러보다가 들어온 건 처음입니다. 도서관 내부에 특정인물의 포스터가 여러장 붙어있는데 작가이자 영화감독, 안드레스 카이세도(Andrés Caicedo, 1962-1977)입니다. 25세 이상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25세가 되던 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천재적인 작가라고 안젤리가 소개해줍니다.
도서관 열람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책이나 자료를 대출(15일)하려면 회원으로 등록해야합니다. 1층에서 안젤리가 찾는 책과 DVD를 검색하고 3층에 올라가서 대출합니다. 꼭대기 5층은 카페테리아인데 음식을 가져와 먹을 수도 있고 전자레인지도 비치돼 있습니다. 라칸델라리아(La Candelaria)를 조망할 수 있는 테라스 카페도 있는데 잠시 나가 서있습니다. 시야 왼편은 빌딩숲, 오른편은 전통 가옥으로 조망이 나뉩니다. 화려한 도시보다 오래된 구도심이나 시골을 좋아하는 우리 둘은 그래서 라칸델라리아를 좋아합니다.
도서관 지하 1층은 음악 자료실입니다. 서가에 빼곡하게 악보가 꽂혀있고 디귿자 벽면을 따라 여러개의 개인 연습실과 작은 공연장이 있습니다. 도서관 규모가 상당하고 시설도 굉장히 좋습니다. 2층에도 공연장이 있는데 상설 공연장은 아니고 한 달에 1~2회 정도 기획 공연이 있습니다. 안젤리랑 몰래 들어가서 프로그램을 찍어 옵니다. 입장료는 6,000pesos~10,000pesos(2~3천원) 정도 하네요. 한번 보러 와야겠습니다.
도서관에서 나오니 폭우가 쏟아집니다. 우산을 받쳐쓰고 제가 좋아하는 채식 식당(NATIVA)에 점심 먹으러 갑니다. 안젤리는 고기를 좋아하는데 다행히 오늘 고기 같은 채식요리가 메인메뉴입니다. 빗소리 들으려고 임시 지붕을 얹은 반노천 테이블에 앉습니다. 비닐 지붕에 타닥타닥 떨어지는 빗소리가 너무 좋습니다.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이말 저말 하다 보니 스페인어 실력도 느는 느낌입니다.
안젤리가 한병철(Byung-Chul Han, 1959) 철학자 아는지 묻습니다. <피로사회>로 잘 알려진 분인데 외국인 친구에게서 그 이름을 들으니 왠지 낯섭니다. 이어서 헤겔, 니체, 키에르케고르, 쇼펜하우어까지 낯익은 철학자의 이름과 사상들이 술술 나옵니다. 제가 단편적으로 알던 철학지식들을 친구가 잘 엮어서 다시 펼쳐보여줍니다. 비 오는 날 시골집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좋아하는 철학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이 가히 환상적입니다.
후식을 먹으러 인근 카페(Casa Galería Café)로 자리를 옮깁니다. 비가 내린 뒤라 조금 쌀쌀해서 안쪽에 자리를 잡습니다. 안젤리가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스케치북과 색연필, 드로잉펜, 컬러링 도안을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카페에 앉아 같이 그림을 그리다가 안젤리가 오늘은 기념적인 날이라며 사진 한장 찍자고 합니다. 직원분께 부탁해서 사진 한 장 남깁니다. 철학, 미술, 심리학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헤세와 융의 이야기까지 등장합니다. 헤르만헤세가 정신질환으로 융의 제자에게 진료를 받았고, 40세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며 치유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하니 친구가 본인은 그럼 헤세보다는 어릴 때 미술치료를 시작한다며 웃습니다. 통하는 게 많고 서로 배울 점이 많은 친구를 만나는 건 행운입니다.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주님께서 저를 콜롬비아에 보내신 이유가 뭘까.. 가끔 생각해 보는데 그때마다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떠오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마지막 코스는 서점(Librería Lerner)입니다. 80년 된 서점인데 들어서자마자 역시 기분좋은 책 냄새가 납니다. 진열된 책 한 권 한 권에 대해 안젤리가 코멘트를 해줍니다. 훌륭한 가이드입니다. 서점 한쪽 벽면에 점심 먹을 때 이야기 했던 철학자 한병철(Byung-Chul Han) 홍보 포스터가 보입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마침맞네요! 둘 다 반가워서 눈이 동그래집니다. 저도 콜롬비아의 철학자들이 궁금해지네요.
(스가랴9:12)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게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Return to your fortress, O prisoners of hope; even now I announce that I will restore twice as much to you.
2023.2. 씀.
'[해외] 여행 생활 봉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82) 일본 자이카 JICA 봉사단원, 한-콜우호재활센터 DIVRI 방문 (ft.콜롬비아보고타미술교육) (0) | 2023.02.27 |
---|---|
(181) 농장 풍경 종이접기 Origami: 오리+새+클로버+해바라기, 장애인 미술 (ft.콜롬비아보고타미술교육) (0) | 2023.02.26 |
(179) 한국전통문화 부채춤 소개+콜라주 작업: 장애인 미술, 수강생이랑 점심 (ft.콜롬비아보고타미술교육) (0) | 2023.02.24 |
(178) 수묵화 한국화 그리기 + 기초 펜드로잉 수업 (ft.콜롬비아보고타미술교육) (0) | 2023.02.23 |
(177) 콜롬비아 친구랑 보고타 한국식당ㅣ삼겹살·김치찌개·비빔밥 (ft.외국인이좋아하는한국음식) (0) | 2023.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