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분반 나누기, 콩테+파스텔 추상화 그리기, 장애인 미술 (ft.콜롬비아보고타미술교육)
수강인원이 새해들어 계속 늘더니 이번주 수요일에는 25명이 오셨습니다. 그중 다섯 분은 오후 수업에 오시라고 돌려보내고 20명과 수업을 하는데 신디의 한숨소리가 여러 차례 들립니다. 저도 좀 힘드네요. 결국 제 수첩을 빌려달라더니 한분한분 여쭤보고 시간을 정합니다. 연초에 제가 제안했던 건데 신디가 도와주겠다고 일단 그대로 해보자고 했었는데 결국 시간표를 짰습니다. 수요일은 하루종일 장애인 그룹 20명, 월요일과 금요일은 오전 오후로 나눠 비장애인 수강생분들로 채웁니다. 명단에 들어가지 않은 분들까지 더하면 오전 수업은 모두 20명 가까이 됩니다. 제 수업이 좋아서 입소문이 난 걸까요. 착각은 자유입니다. 앞으로 남은 활동기간 동안 대규모 수강생들과 어떻게.. 잘.. 해봐야겠습니다.
콩테(Carboncillo)와 파스텔(Pastel)은 수강생분들이 좋아하지 않는 재료입니다. 콩테는 특유의 긁히는 듯한 질감때문에, 파스텔은 색감이 흐릿하고 다루기 까다로운 데다가 가루도 많이 날려 늘 색연필에 순위가 밀립니다. 오늘은 꺼리는 이 두 재료로 추상화 작업을 해봅니다. 장애가 있거나 그림을 처음 그리는 분들은 형태를 잘 못 잡으니 그림을 작게 그리는 경향이 있어 도형을 순서대로 하나씩 같이 그립니다. 파스텔을 크레용처럼 사용하는 분들이 많아 신디와 돌아다니며 한 분 한 분 사용법을 알려드립니다. 파스텔 수업하는 날은 KOICA 반팔 유니폼을 입고 오는데 역시나 오늘도 손이며 팔까지 컬러가 묻습니다.
2시간 수업 중 1시간은 같이 배우고 다음 1시간은 앞서 배운대로 자유화 작업을 하시도록 합니다. 추상화는 아직 좀 어려우니 대부분 형태가 있는 사물을 그리십니다. 그래도 귀퉁이에 작게 그리시던 분들이 가운데 크게 스케치하시는 걸 보면 조금씩 그림에, 자신에, 인생에 용기를 내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엄지 손가락을 열심히 치켜듭니다. 파이팅! 처음 오신 두 분이 드로잉에 꽤 소질이 있어 보이셔서 다음 시간에 따로 스케치를 봐드리기로 합니다.
장애인 수강생분들이 갑자기 늘어 신디도 저도 거기 집중하다보니 수채화, 아크릴화, 유화 수강생분들은 불만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다른 쪽 테이블에서 캔버스 작업 중이신데 조금 색다른 스타일의 그림을 보여드리고 시도해 보시길 제안합니다. 미술실에 대형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어 항상 음악을 틀어놓는데 인원이 많고 소음이 좀 있으니 음악소리도 묻힙니다. 캔버스 작업하시는 분들께는 필요하면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사용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만화, 세밀화 드로잉은 이제 6명으로 늘었습니다. 안드리는 매일 실력이 느는게 눈에 보입니다. 손가락에 보조선을 그어가며 건축설계사처럼 드로잉 합니다. 오른손이 완전히 마비되어 마비가 덜한 왼손을 재활 중인 띠께 역시 세밀화를 선호합니다. 왼손잡이도 아니고, 또 반쯤 마비된 손이지만 저 정도(거미 그림) 그리는 걸 보면 재활 의지가 강한 분인 듯합니다. 20분에 한 번씩 일어나 손과 팔 스트레칭을 하시도록 신디와 제가 교대로 챙깁니다.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는 아이껜과 알렉스도 올해 처음 수업에 왔습니다. 미술실이 꽉 찬 걸 보고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오후수업에는 10명 정도 오셔서 저 혼자 수업을 진행합니다. 도안을 나눠드리고 콜라주 작업을 같이 합니다. 팔과 다리에 마비가 있는 하메르스 역시 작업물을 보면 저와 비슷한 완벽주의 성향이 보입니다. 하메르스도 중간중간 손과 팔을 주무르고 스트레칭 하시도록 합니다. 회사 다닐 때나 주말에 잠깐씩 자원봉사하러 다닐 때는 몰랐는데 수십 명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모든 분들을 동일한 마음으로 대하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걸 깨닫습니다. 가르치는 자리에 선다는 것은 매 순간 자신의 말과 행동을 성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기우는 수강생이 있기 마련인데 그분들께도 과한 애정이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의식해서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자신의 작업을 이끌어가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최근에 여자친구가 생겼다며 즐겁게 이야기하는 호르헤는 그래서인지 요즘 얼굴이 더 좋아지셨습니다. 그림에도 꽃이 폈습니다. 약간의 인지장애가 있으신데 평소 가장 많이 사용하시는 표현이 'OOO es muy buena gente! (OOO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입니다. 오늘은 제가 'Jorge es muy buena gente!'라고 말씀드리니 옆에 다른 수강생분들이 호르헤식 표현이라며 다같이 웃습니다. 좋은 연애하시길 바랍니다.
(고린도전서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Now you are the body of Christ and each one of you is a part of it.
2023.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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