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KOICA 해외봉사 일기ㅣ콜롬비아 미술교육
콜롬비아 국경일 Columbus Day_2nd, 센트로 지역 구경; 보테로 미술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1932)가 기증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보테로 박물관(Museo Botero)으로 갑니다. 입장은 무료이고 입구에서 가방 검사 후 들어갑니다. 로비에 들어서면 청동으로 제작한 오동통한 손 조각이 전시돼있습니다. 손가락 모양이 마치 '안녕하세요' 하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박물관은 2층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보테로의 작품과 보테로가 기증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같이 전시하고 있습니다.
1층 전시실에는 귀여운 <12세의 모나리자 Monalisa, 1959作> 작품이 있습니다. 가볍고 부드러운 색감에 통통한 모나리자의 모습이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합니다. 1961년 뉴욕 현대미술관이 이 작품을 구입하면서 보테로는 유명세를 탑니다. 작은 코, 작은 입, 넓은 미간을 가진 보테로 특유의 앙증맞은 얼굴 표현도 재미있습니다. 보테로는 진지하거나 무겁지 않아서 좋습니다. 보고 있으면 마냥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잘 가꾸어진 중앙정원 주위로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마련돼있습니다. 보테로의 부담스럽지 않은 그림은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듯합니다.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이 보입니다. 보테로는 회화뿐 아니라 조각도 동글동글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옆모습만 보고 너구리를 연상하고 앞을 보니 고양이입니다. 목에 인식표를 걸고 있는 걸 보면 살쪄서 귀여운 집고양이네요. 작품명은 <고양이 Gato gordo, 1987作> 입니다.
2층의 한 전시실에는 데생 작품만 모아두고 있는데 채색을 쓰지 않았지만 보테로 특유의 스타일이 살아있습니다. <우는 여인 Mujer llorando, 1990作> 이 특히 눈에 들어옵니다. 성별이나 나이를 알 수 없는 묘한 이미지의 여인이 이마와 미간을 찌푸리며 우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지면서도 곧 언제 그랬냐는 듯 눈물을 그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만 같습니다. 눈물은 마음속 슬픔을 닦아내는 손수건일지도 모릅니다.
1층 로비에서 중앙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2층 복도 좌우편에 그림과 부조가 각각 걸려있습니다. 그림은 리처드 에스테스(Richard Estes, 1932)의 포토리얼리즘 작품으로 미국 브로드웨이를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부조 작품은 조각가 레이몬드 메이슨(Raymond Mason, 1922)의 <파리 Paris, 1991>입니다. 멀리서 보면 회화인 듯 보이지만 건물이나 골목을 하나하나 조각한 작품입니다. 이런 좋은 작품을 대가없이 내어주고 많은 사람이 누리게 해주는 보테로의 그림처럼 넉넉한 마음에 감사합니다.
2층 벤치에 잠시 앉아 지붕 위를 쳐다보니 몬쎄라떼 정상에 우뚝 선 예수상(estatua de Jesus)이 보입니다. 한 국가의 가치관을 규정하는 국교가 있다는 게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보고타는 오전엔 맑고 오후엔 거의 매일 비가 오는데 또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다행히 집 가는 버스가 보테로 미술관 바로 앞에 오니 맘 놓고 더 둘러봅니다. 그림이나 책에는 좋건 나쁘건 작가의 영혼이 담깁니다. 어떤 마음으로 작품 활동을 하느냐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보테로의 그림에는 유쾌하고 따뜻한 무언가가 있어서 참 좋습니다.
보테로 님(갑자기 존칭 ㅋ)이 기증한 작품도 그 수가 꽤 됩니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모자를 쓴 여인 Mujer con sombrero, 1943作>은 볼 때마다 이 여인과 꼭 닮은 제 친구가 떠오릅니다. 오랜만에 연락해봐야겠습니다. 바다와 하늘을 주로 그린 프랑스의 풍경화가 외젠 부댕(Eugene Boudin, 1824-1898)의 그림도 좋아합니다. 영국에도 비슷한 화풍의 작가가 있는데 유럽의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천둥소리가 들립니다. 비가 곧 시작될 건가 봅니다. 구글맵에서 조회한 버스정류장에 서있는데 저 좁은 골목으로 버스가 어떻게 올까.. 하는 마음에 근처 보안요원에게 여기 버스가 오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합니다. 10분쯤 기다리니 마을버스인 듯 작은 버스가 탈탈거리며 옵니다. 버스가 얼마나 작은지 제 키에도 버스 천장에 머리가 닿을 것 같습니다. 보고타(Bogotá) 시내버스는 내부에 노선도도 없고 하차할 곳 안내방송도 없습니다. 그냥 알.아.서 내려야 합니다. 구글맵을 보면서 집 근처 적당한 곳에 내립니다. 승차감 좋은(!) 버스 덕분에 버스에서 내리니 평안이 찾아옵니다. 현지인들도 혼자 가면 위험하다는 센뜨로에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주님 늘 함께 해주시니 감사합니다.(아멘)
2022.10.
글약방her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