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KOICA 해외봉사 일기ㅣ콜롬비아 미술교육
추상화 그리기, 콜라주 Collage 작업 (ft.콜롬비아 보고타 미술교육)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치니 창틀에 앉아있던 새 두 마리가 건너편 전깃줄로 자리를 옮깁니다. 짝꿍인 듯 비슷하게 통통한 새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았네요.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내내 그 자리에 있습니다. 집 앞에 전깃줄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관심이 없으면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정말 맞습니다. 아침엔 대체로 커피, 요구르트, 계란을 기본으로 옥수수, 오이, 토마토, 망고, 사과, 자두 같은 야채와 과일을 섞은 샐러드를 같이 먹습니다. 이렇게 먹으면 오전 수업하고 12시 점심때까지 배고픔은 못 느낍니다.
아크릴 물감이 굳은 게 많아서 구입을 해야하는데 DIVRI 쪽에도 이야기는 했고, 저도 곧 KOICA에 물품 신청을 할 예정입니다. 이용자분들이 아크릴화 작업을 좋아해서 비록 몇 개는 굳었지만 수채물감을 섞어서 그림을 그립니다. 오늘은 추상화를 그려보기로 합니다. 항상 풍경이나 사물만 그리시는 분들께 새로운 시도를 해보시길 권유해봤습니다.
20대 중반의 이용자분인데 추상화에 대한 개념을 잘 이해하신 듯합니다. 풍경화만 그리시던 분인데 새로운 시도도 잘 받아들이십니다. 숫자로 사람을 표현해보겠다고 하시며 스케치 작업 없이 아크릴 물감으로 과감하게 그림을 그려나갑니다. 결과물도 멋집니다. 아크릴 물감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물을 거의 섞지 않고 또렷한 컬러를 잘 살렸습니다.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드는 분인데 자유로운 성향에 예술적인 감각이 있으신 분입니다.
대부분의 이용자분들은 추상화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당연할 수도 있는것이 콜롬비아는 정규 교육과정에 미술이 포함되지 않아 기초적인 지식이 없고, 보통은 보고 그리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형태를 왜곡하거나 새로운 형태를 창조해내는 일이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만화 캐릭터나 자동차를 주로 그리시는 분은 역시나 만화 캐릭터의 얼굴만 크게 그립니다. 우주 공간을 그리는 분들도 계시고, 도롱뇽, 그냥 풍경화를 그리고 평소와 다른 컬러를 사용한 분도 있습니다. 언젠가 추상화에 대해 영상자료를 보여드리는 시간을 만들어봐야겠습니다.
만화 캐릭터 얼굴을 그리신 분은 자폐스펙트럼장애(ASD)가 있는 분인데 같이 온 아버지께서 제게 아들이 추상화 그리는 걸 어려워한다며 그리고 싶은걸 그리면 안 되냐고 합니다. 물론 됩니다. 다시 종이를 드리고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도록 하니 역시 좋아하는 트램(Tram)을 그립니다. 손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분들께는 미리 준비해둔 컬러링 도안을 나눠드리고, 시각장애가 있는 분께는 콜라주(Collage) 작업을 하시도록 합니다. 처음에는 다양한 장애를 가진 분들이 오시는 게 당황스러웠는데 이제는 그분들에게 적당한 작업을 권유할 정도의 여유는 생긴 것 같습니다.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분이 처음 제 수업에 오셨습니다. 어머니와 동행했는데 기관(DIVRI)에 온걸 보면 아마도 부모님이 군인인 듯합니다. 그림을 그려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해서 컬러링 도안 몇 개를 보여주며 원하는 것을 색칠하도록 합니다. 빈칸 없이 각기 다른 색으로 잘 채웁니다. 종이 접기나 클레이 작업이 도움이 될 듯한데 다음 시간에 오시면 같이 해보기로 합니다. 장애의 종류에 따라 어떤 작업이 도움이 될지 고민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제가 장애인 미술을 공부하지도 않아서 매번 새로운 도전입니다. 미술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게 쉬운 과제부터 조금씩 하실 수 있도록 해보려고 합니다.
2022.10.
글약방her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