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KOICA 해외봉사 일기ㅣ콜롬비아 미술교육
오일파스텔, 기하학 패턴 작업, 펜 드로잉
감기 5일차, 기침만 멈추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기침이 안 납니다. 콧물은 여전하지만 다행이라 여기고 아침을 먹고 기관(DIVRI)에 출근합니다. 지난 며칠간 내내 저를 걱정해준 코워커 신디(Cindy)가 반겨줍니다. 열이 나서 병원에 가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 없이 이 정도에서 감기가 회복되어 감사합니다. 미술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훌륭한 교수법이나 좋은 재료보다 단 한분이라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해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봉사활동 기간이 끝나는 날까지 이 자리를 잘 지킬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은 오일파스텔(Pastel al óleo)로 작업을 해보기로 합니다. 파스텔(Pastel)과의 차이점, 표현기법 몇가지를 알려드리고 재질이 다른 종이를 두장씩 나눠드립니다. 파스텔과 오일파스텔을 이용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시길 제안합니다. 10시 수업 시작때 5명이 오셔서 오늘은 무리하지 않고 차분하게 수업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20분쯤 지나니 10명이 넘습니다.
문득 저도 모르게 '아.. 오늘은 몸이 좀 힘든데 또 왜이렇게 많이 오시는 거야'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거의 동시에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시는구나'라는 마음이 쑥 올라옵니다. 혼자 마스크 속에서 피식 웃고, 늦게 오신 분들께도 동일하게 설명을 드리고 재료를 나눠드립니다.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여기저기서 저를 찾습니다. 제 커피는 오늘도 식어갑니다.(후루룩)
오늘도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옵니다.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이용자분들의 성향이 그림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보는데 그게 정말 흥미롭습니다. 재료의 특성이나 사용법을 알려드리지만 그대로 하는 분은 몇 분 없습니다. 각자 원하는 대로 재료를 쓰시는데 그게 오히려 감사합니다. 모두가 자신만의 기법을 가진 예술가입니다. 제 스타일을 이용자분들께 주입하지 않도록 늘 스스로를 다잡습니다.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그림을 처음 그린다는 분이 한분 더 오셨습니다. 해, 구름, 나무, 집, 길, 자동차, 꽃, 분수대, 벤치들을 캔버스에 빈틈없이 꼼꼼히 채워 넣습니다. 아이처럼 순수하고 예쁜 그림이 완성됩니다. 모든 대상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고 부분적으로 디테일한 표현이 나옵니다. 꾸준히 그림을 그리시길 제안합니다. 어쩌면 저와 비슷한 예민한 성향을 가진 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혼자 해봅니다.
자폐스펙트럼장애(ASD)가 있는 두 분의 그림입니다. 위 캐릭터를 그리신 분은 수업시간에 늘 제 어눌한 스페인어를 따라 하셔서 웃음을 주는 분입니다. 아래 그림을 그리신 분도 오늘 처음 오셨는데 복도에서 가끔 뵐 때도 약간의 공격성이 느껴지던 분입니다. 이 그림 한 장을 30분 만에 그리고 갖고 가셨는데 떠난 자리가 심하게 더럽습니다. 또 오시면 파스텔보다 연필 드로잉이나 종이접기 같은 것을 먼저 하시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늘 익숙한 풍경화만 그리는 두 분께 기하학 패턴(Patrón geométrico) 작업을 해보시길 제안합니다. 자를 챙겨들고 선을 그으려 하시길래 형태가 고르지 않아도 되니 자유롭게 그려보시라고 말씀드리고 한참 후에 가서 봅니다. 익숙한 그림만 익숙한 방식으로 그리다 보면 관찰력이나 상상력이 떨어집니다. 한분은 이 그림을 갖고 가겠다고 하시더니 메신저 배경화면으로 해두고 싶다고 합니다. 앞으로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갖고 여러 시도를 해보셨으면 합니다.
디테일이 약한 분과 너무 디테일한 두분께 동일한 사진을 보여드리면서 펜 드로잉을 해보시라고 합니다. 서로 의논도 하고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그림을 그리시는데 결과물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디테일에 강한 분은 결국 구도만 잡다가 완성을 못하셨고, 다른 분은 구도 잡는 법을 한참 배우시더니 결국 자기 스타일대로 그림을 완성합니다. 본인들도 재미있는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합니다. 각자 그림을 들고 활짝 웃는 모습에 저도 웃음이 나네요.
2022.10.
글약방her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