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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다른 길ㅣ박노해 (aka 티베트-인디아 사진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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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다른 길ㅣ박노해 (aka 티베트-인디아 사진에세이) 


박노해님의 글을 좋아합니다. 박노해님은 단어 하나, 조사 하나 그냥 써내려가는 법이 없습니다. 모든 표현에 그것이 꼭 거기 쓰여야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생각을 눈으로 천천히 따라가며 읽다보면 현실감각을 잃어버릴 정도로 글에 푹 빠집니다. 숱한 고뇌와 좌절을 겪은 사람만이 이런 좋은 글을 쓸 수 있겠지요. 삶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참 아름답습니다. 

 

"나에게는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지금 이대로 괜찮지 않을 때, 지금 이 길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질 때, 바로 그때, 다른 길이 나를 찾아온다. 길을 찾아 나선 자에게만 그 길이 나를 향해 마주 걸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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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은 모두 저에 관한 이야기, 저에게 하는 이야기, 저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의 삶의 여정에 다 들어맞습니다. 박노해님의 통찰이 얼마나 깊이 있고 냉철한지 알 수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을 '무사히' 마쳤으니..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만이 인간다울 수 있습니다. 신의 도움 없이 우리가 '먹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감사의 의미로 생업을 내려놓고 순례를 떠나는 청년 똥꼬하단이 바로 저입니다.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을 무사히 마쳤으니 이제 내 영혼을 위해 순례길에 나섰습니다. 돈은 빛나도 내 마음이 어둠이라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제가 콜롬비아에 와서 인상적인 것 중 하나가 여성들끼리 인사할 때 포옹을 하고 가볍게 볼을 부비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단순한 인사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꼬옥 끌어안고 Buenos días, ¿cómo está? (안녕! 오늘 어때?) Descansen. (잘 쉬어) 이라고 인사하는 것에는 '내가 당신을 알고, 함께 있고, 안녕을 바란다' 라는 무언의 의미가 담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인사법이 콜롬비아의 높은 행복지수와도 관계가 있을 듯합니다. 마음이 담긴 스킨십은 치유 효과가 있습니다. 티베트의 소녀는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버끄리는요, 제가 안아주면 나아요. 많이 아픈 애들은요, 밤에 안고 자면 다 나아요."




아래 글 왼쪽 페이지에 남자아이 둘의 사진이 수록돼있습니다. 글을 읽기 전에 사진을 먼저 봤는데 울컥하고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깊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픔을 머금고 있습니다. 

 

"한 생에 겪을 고통과 비극을 다 보아버린 눈동자... 눈물 젖은 아이들의 눈동자에서 나는 신을 본다. 거대한 성전이 아닌 이 눈동자에서 신을 만난다." 



공기도 희박한 고원의 대지, 티베트(Tibet)는 평균 해발고도가 4,000m이상입니다. 제가 있는 보고타(Bogotá) 역시 해발 2,700m의 고산인데, 이곳에서도 숨 쉬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조금만 걸음을 빠르게 옮겨도 숨이차고 크게 웃기만해도 머리가 띵 합니다. 그래서인지 보고타 사람들은 행동이 크지 않습니다. 말도 조근조근 작게 하고, 큰 소리를 내거나, 급하게 뛰거나 하지 않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인간은 겸손해집니다.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습니다. 티베트는 더 잠잠할테지요. 

 

"공기도 희박한 고원의 대지에서 청보리밭을 간다... 삶에서 가치 있는 것들은 이렇게 꾸역꾸역 불굴의 걸음으로 밀어가야 한다는 듯이, 쟁기를 잡은 농부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숨쉴 공기가 얼마나 귀한지 공기가 희박한 곳에 와서야 깨닫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겪는 것은 교집합이 조금도 없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 부족하게 되면 인간은 본질에 집중한다는 것도 배웁니다. 본질적인 가치 외에 그 무엇도 우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풍족한 환경에서 정신은 흐트러지고 본질을 놓치기 쉽습니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지금 여기, 한 걸음 한 걸음이 이미 목적지입니다. 

 

"목적지가 가까워 올수록 속도를 줄여가며 숨을 고른다. 이 길고 험한 순례길이 무엇을 위해 왔는지를 되새기면서, 다만 그곳에 가기 위해 가는 어리석음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지금 여기, 한 걸음 한 걸음이 이미 목적지임을 되새기면서."



2022.8.

글약방her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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