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소설 시 독후감

[책] 오베라는 남자 A man called OVEㅣ프레드릭 배크만 (aka 스웨덴 영화)

728x90
반응형


[책] 오베라는 남자 A man called OVEㅣ프레드릭 배크만 (aka 스웨덴 영화)


제목에서부터 뭔가 하고자 하는 말이 많은 듯한 책이 있습니다. '오베라는 남자(A Man Called OVE)', 이 책이 그렇습니다. 어딘지 사연이 많은 듯하고,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될 것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책을 읽다보니 전에 한번 읽은 듯한 생각이 들어 인터넷에 찾아보니 영화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아마 제가 영화 리뷰채널에서 오베(OVE)씨를 먼저 만났던 것 같습니다.


반응형


사람을 컬러에 비유하자면 오베(OVE)씨는 흑백입니다. 지나온 그의 삶을 아는 사람이라면 흑백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베씨가 가진 흑백의 정체성을 나쁘다고, 잘못됐다고, 혹은 부적절하다고 누가 말 할 수 있을까요. 다만, 그런 것이 한 인간의 삶이고 정체성입니다. 그런 오베씨에게 여러가지 색깔을 가진 쏘냐라는 여성이 나타나고 오베씨와 오베씨의 삶을 컬러로 물들입니다.

 

"사람들은 오베가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까칠한 이미지로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오베씨에 대한 묘사가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바람("오베가 주변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해서 사람들이 그를 좋아해줬으면 좋겠어요.")대로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친구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까칠하고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으로 그를 평가합니다. 저는 그 친구가 누구보다 여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늘 오베가 '까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빌어먹을 까칠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내내 웃으며 돌아다니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게 누군가가 거친 사람으로 취급당해 싸다는 얘긴가?"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이 조심스러워진 시기가 있습니다. 나는 괜찮고, 너는 그렇지 않다는, 위로라는 단어에 담긴 시혜의 의미가 느껴지던 때부터 입니다. 어릴적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0대시절엔 아버지의 죽음까지 직접 목격한 한 사람, 오베씨의 삶이 어떠했을지 감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저 함께 있는 것 외에 같은 인간으로서 더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군더더기라는 생각입니다. 

 

"그는 행복하게 사는 걸 멈췄다. 그는 그 후 오랫동안 행복하지 않았다... 그가 목사에게 설명한 바에 따르면 그건 오베가 신을 믿지 않아서라기 보다 신이 좀 ....처럼 느껴져서였다." 



과학적인 견해에서 볼 때, 죽음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오히려 '생명'이 부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인간이 죽음을 바라볼 때 거꾸로 부자연스러움으로 인지하는 것이죠. 정 반대의 항에 있는 두 개념, 경험해 볼 수 없기에 죽음에 대해 우리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마치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 양 살아가지요. 결국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삶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죽음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과학의 견해가 옳습니다. 

 

"죽음이란 이상한 것이다...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이 책이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호응을 얻은 이유를 생각해봅니다. 오베씨의 인기는 지금 우리 사회가 묵묵히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따뜻하고 원칙을 지킬 줄 아는 인간을 원한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안정된 삶에 대한 전 세계의 바람이 반영된 셈입니다. 오베씨는 유서에 '내 장례식에 난리법석을 떨어서는 안 된다, 조문객 금지, 시간낭비 금지!'라는 말을 남겼지만 300명이 넘는 사람이 장례식에 왔습니다. 오베씨는 단정하고 멋진 삶을 살다 갔습니다. 

 

"그는 따돌림을 당하지도 않았고, 따돌리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중심에 있었던 적도 없었고, 겉돌았던 적도 없었다.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지금 이게 내 모습이고 내가 할 일을 하고 있다.' 오베에게 이거면 충분했다."


이 부분이 특별히 눈에 들어옵니다. 오베씨가 병원의 주차요원과 다투는 것은 '이 상황이 과연 인간적으로 옳은 것인가'를 주제로 한 언쟁인데, 주변 사람들은 오베씨를 마치 '돈을 내지 않으려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이상주의자인 저로서는 오베씨가 충분히 이해됩니다. 북유럽 감성이 저와 잘 맞는 것도 같은 맥락일까요. 

 

"사람들이 죽으러 갈 때(병원)도 주차 요금을 걷으려 드는 건 오베 생각엔 도를 지나친 것이었다. 그는 이 점을 주차요원에게 누누이 설명했다... 바로 그때 파르바네가 자기가 기꺼이 요금을 내겠다고 화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마치 돈을 지불하느냐 마느냐가 이 토론의 핵심이라도 한 것처럼." 


'오베(OVE)'씨는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동시에 일상에서 오해하기 쉽고, 그래서 외면하기 쉬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그릇된 시선을 바로잡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에 대한 불필요한 관심은 시간낭비라 여기는 요즘 시대에 수많은 '오베(OVE)'씨가 이 책을 읽고 위로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목차에서 계속 반복되는 '오베라는 남자'라는 표현이 마치 주목받지 못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귀중한 '오베(OVE)'씨들을 불러내는 주문처럼 느껴집니다.

 

여운이 남는 책입니다. 오베씨를 닮은 제 친구가 많이 생각납니다. 얼마전 제게 "보고싶다."라는 한 마디를 카톡메시지로 보낸 오베씨를 닮은 친구가 보고싶습니다. 


2022.8. 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