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폴란드 여행 스케치 8화
ㅣ크라쿠프(Krakow) 시내 구경, 리넥 광장, 성모승천교회 내부
같은 숙소에 묵고 있는 미국인 조이(Zoe)와 함께 크라쿠프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조식을 먹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국어를 몇 마디 알려줬는데 발음이 예쁘다며 좋아한다. 학교에서 스페인어와 불어를 배웠는데 지금 한마디도 못한단다. 한국어도 하고 영어도 할 줄 아는 내가 대단하다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으면 자긴 혼자 여행도 할 수 없었을 거라며 미국에 태어난 게 '행운'이란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대화를 수시로 하게 되는데 조이는 특히 native enghish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듯하다.
조용한 시내 거리를 걷다보니 일정을 쫓아다니던 날은 보지 못한 아기자기하고 예쁜 골목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특별한 일정이 없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배고프면 식사하기로 한다. 조이는 옆에서 쉼 없이 이야기를 한다. 우리나라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은데 우리나라에 대해 나는 아는 게 별로 없구나. 노란색 벽에 초록색 식물이 눈에 띄는 카페에 들어가 차 한잔 한다.
크라쿠프 중앙시장이 있는 리넥 광장(Rynek Główny w Krakowie)에 다시 왔다. 좀 전에 잠시 소나기가 내려서 공기가 차가워졌다. 아케이드 시장 입구의 회랑에 서서 성모승천교회를 바라보니 엽서에 나올 듯한 장면이 카메라 앵글에 잡힌다. 오늘은 광장에 한국인 관광객도 몇 명 보인다.
비가 내려 쌀쌀하기도 하고 교회 내부도 둘러볼겸 성모승천교회(Kościół Mariacki) 안으로 들어가 본다. 입장료와 별개로 촬영료(?)도 있는데 비용을 지불해야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있고 해당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여준다. 약 800년 전인 1222년에 지어진 고딕 양식의 교회인데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성모승천교회의 대표적인 유물이 아래 제단화인데 대략 200여 명이 넘는 주요 인물이 조각되어 있고,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단화로 손꼽힌다. 조각가 바이트 슈토스(Veit Stoss, 독일)에 의해 12년 동안 제작되었다고 한다. 촬영료를 지불했다는 생각에 꼼꼼하게 하나하나 둘러보고 사진으로 남겼다.
조이(Zoe)는 오후 6시 비행기로 독일로 간다. 1시쯤 점심으로 스파게티를 먹고 조이는 짐 챙기러 숙소로 갔다. 나는 내일 아침 비행기로 독일 가는 일정인데, 내일 허리케인 소식이 있어 오늘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내일 가기로 한다. 이 결정을 크게 후회하게 될 줄 이때는 알지 못했다. 소나기를 쏟아낸 하늘이 더없이 맑다.
숙소에 돌아와서 짐을 정리한다. 여러 번 접어서 가방에 넣어 다닌 크라쿠프(Krakow) 지도와 자코파네(Zakopane) 지도. 구글 지도가 세세한 길안내는 잘해주지만 역시 낯선 여행지에서 '관광지도'만큼 도움 되는 건 없다. 크라쿠프 여행을 계획하면서 아우슈비츠(Auschwitz) 강제 수용소에 갈지 고민을 여러 번 했었다. 크라쿠프 여행객이라면 당연한 코스처럼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니까. 크라쿠프에 도착해서도 고민을 했지만 결국 가지 않기로 했다. 쉰들러 공장(Oskar Schindler's Enamel Factory)만 둘러봐도 마음이 무너지는데 아우슈비츠는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예민한 성정 탓에 나는 우리나라 독립기념관도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다. 폴란드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한다. 내일은 허리케인을 뚫고 무사히 독일 뉘른베르크(Nuremberg)에 도착하길 바란다.
3월의 폴란드 여행 스케치(1화~8화) 끝.
2022.4.
글약방her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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