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절망은 나의 힘; 프란츠 카프카ㅣ가시라기 히로키, 실패와 절망의 대명사 (한스미디어)
'절망은 나의 힘', 이 책은 누구보다 우울하고, 나약하고, 소극적이며, 부정적인, 실패의 달인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가 남긴 절망의 문장들입니다. 목차를 봅니다. '미래에 절망하다', '세상에 절망하다', '왜소한 몸에 절망하다', '심약한 마음에 절망하다', '부모에 절망하다', '학교에 절망하다', '직업에 절망하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삶의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위인들이 긍정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교훈하는 책들보다 이 책에서 오히려 제대로 된 빛을 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용기만 있다면, 모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지금 당장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이런 말이 위로가 될까요. 무슨 교과서 같은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할겁니다.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에게 '괜찮아 낫는다고 생각하면 나을 수 있어' 같은 말은 자칫 오만함으로 비치기까지 합니다.
p.10
카프카는 위대하다. 보통사람보다 한수 위라서가 아니라 훨씬 아래라는 의미에서 그는 위대한 사람이다. 카프카만큼 절망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그 누구보다 절망했고, 엄살을 떨었으며, 절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 없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우리는 긴장하지 않고 그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성공한 사람이 높은 곳에 서서 잘난 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32
인간의 근본적인 연약함은 승리를 쟁취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모처럼 손에 넣은 승리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사람은 실패에도 약하지만 의외로 성공에도 약한 면을 가지고 있다.
p.42
꽤 멀리까지 걸었습니다. 다섯 시간 정도 혼자서. 그래도 고독이 모자라네요.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 골짜기이지만 그래도 외로움이 모자랍니다. 고뇌로 마음이 가득해지면 사람은 현재 있는 곳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심리가 생긴다. 너무 괴로워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사람은 고독을 갈구한다. 때론 외로움이 마음을 안정시켜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명백하게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혼자 있기를 고집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p.64
인생에 필요한 능력을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나,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인간적인 약점뿐. 그는 아버지처럼 사회에서 다부지게 살아가는 인간을 경멸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편으론 동경하기도, 존경하기도 했겠지만 적어도 자기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카프카는 자신의 허약함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p.74
행복에 이르는 완벽한 길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자기 안에 있는 확고한 것을 신뢰하고 그것을 가꾸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불구화현상(Self Handicapping),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안 좋은 결과를 예상하고 미리 포기함으로써 실패했을 때 자존심의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심리.
p.116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진정한 자아라는 것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내게는 그것이 너무나 확실히 보인다. 일하고 있는 나는 마치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가능한 한 오래 머리를 들고 있는 꼴이다. 그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얼마나 에너지를 빼앗기는 것일까.
p.126
당신도 소문을 듣게 될지 모르겠군요. 왜 내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지. 왜 문학을 직업으로 삼지 않는지. 거기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은 한심한 답변밖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내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습니다. 아마 지금의 직업은 나를 망치고 말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시일 내에 그렇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가슴에 와닿는 문장은 읽는 동안 '누군가의 글'이 아닌 '나의 글'처럼 느껴집니다. 카프카의 독백이 제게 큰 위로가 되는 이유입니다. 저를 독려하는 수많은 문장들을 붙잡고 주저앉지 않으려 애쓰고 살다가 그냥 다 놓고 같이 주저앉아있자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카프카의 '엄살'과도 같은 절망은 병적으로 예민하고 섬세한 그의 성정으로 인한 것일 겁니다. 그러한 카프카였기에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이 척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까지 진실한 위로를 나눠줄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2022.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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