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잉글랜드 코츠월드(Cotswold) 여행 3화
교회에서 나와 마을 뒤편으로 돌아간다. 버튼온더워터는 영국인들이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마을로 꼽힌다. 하이스트릿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는 그래서인지 현대식 건물들이 꽤 들어서 있다. 이 집에 사는 노인 한분이 나오더니 옆집으로 마실을 간다. 친구가 "젊어서 뭘 해서 돈 벌어서 이런데 살지?"라고 혼잣말처럼 흘린다. 아마도 친구는 노년에 이런 마을에서 살게 될 건가 보다.
동네를 산책하다보니 아주 큰 저택도 있고, 작은 집들도 있고, 또 다른 교회, 양 방목지, 다세대 주택인 듯한 곳도 보인다. 'Private' 안내문을 붙여둔 데가 많다. 아마도 하이스트릿에 있는 집들은 관광용으로 내어주고 이곳 주민들은 안쪽으로 거주지를 옮겨야 했을 것이다.
좁은 돌담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양을 키우는 목장이 있다. 양들 엉덩이 털에 초록색, 빨간색 표시가 돼있다.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목장이라 소유자를 표시해뒀다. 등이 가려운지 양 한 마리가 펜스에 몸을 비비적댄다. 마을 우체국에는 빨간색 로열메일(Royal Mail) 차량이 정차해있다. 안 가는 곳이 없는 로열메일이네.
마을의 가장 끝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나기를 만났다. 우산을 차에 두고와서 친구랑 잠시 큰 나무 아래서 몸을 피한다. 나무가 얼마나 크고 잎이 우거졌는지 꽤 큰 소나기에도 비 한 방울 맞지 않았다. 나무에서 비를 피하는 이 상황이 마치 소설에 나오는 한 장면 같네. 재미있는 건 오리들도 나무 아래 옹기종기 모여 소나기를 피하고 있다. 너네들도 비 맞는 것 싫어하는구나.
소나기가 지나가고 촉촉히 비를 머금은 마을에 흙냄새 풀냄새가 섞여 신비로운 느낌마저 든다. 친구와 둘이 감탄사를 교대로 이어간다. 아 정말 좋다. 해가 지고 마을에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지고, 집 안에도 조명이 켜진다.
마을 반대편 끝에는 넓은 언덕이 나오는데 소를 키우는 목초지인 듯 언덕 위에 소 무리가 보인다. 저녁이 되어 목동이 소 떼를 부르는 듯 느긋하게 한 방향으로 소들이 걸음을 옮긴다. 마을 주민들이 양을 키우고, 소를 키우고, 소품 가게를 운영하고, 호텔을 운영하고, 우체국이 있고, 식당이 있는, 작은 시골마을. 잠시 여행 온 내게만 친절한 마을은 아니겠지. 마을 입구에 버튼온더워터(Bourton on the Water)라는 요란스럽지 않은 철제 표지판도 있는 듯 없는 듯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림 부분은 뚫려 있어서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계절이나 날씨, 시간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저녁은 호텔에서 먹기로 해서 산책을 마치고 7시쯤 다시 숙소로 간다. 호텔 로비, 그러니까 작은 거실에 앉아 호텔 주인이자 종업원인 Mr. Simon의 안내를 기다린다. 어느 중세시대 영화에 나오는 저택에 있는 기분이다. 벽난로가 타탁타탁 소리를 내며 타고, 라디에이터도 따뜻하게 공기를 덥히고 있다.
잠시 후 Mr. Simon이 메뉴판을 가져다 주고, 메뉴를 고르는 동안 간단하게 먹을거리를 함께 준비해준다. 베이컨을 치즈에 찍어먹는 건데 일단 예쁘고 정말 맛있다. 본 메뉴도 기대된다. 친구와 구글링을 해가며 3코스-전채요리, 식사, 디저트를 신중히 고르고 친구는 레드와인, 나는 화이트 와인을 한잔씩 하기로 한다. Mr. Simon에게 메뉴를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니 자리를 안내해준다.
식사 장소는 역시나 아늑하고 과하지 않은 단정하고 우아하게 인테리어된 공간이다. 호텔 레스토랑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영국인의 가정집에 식사 초대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다. 소품 하나, 장식 하나, 모든 게 섬세하게 다듬어져 있다. 속으로 흥분하고 감탄하며 자리에 앉는다.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고 '우와!'의 연속이다. 요리 하나하나 흠 잡을데 없이 완벽하다. 따뜻하고 신선하고 부드럽고 식감 좋고 플레이팅도 예술이다. 스테이크 굽기도 딱 좋고, 연골 요리는 쫀득쫀득 고소하고 맛있다. 둘이서 무슨 음식 품평회 온 듯 내내 맛보고 평가하고 감탄한다. 친구는 업무차 클라이언트랑 고급 레스토랑에 많이 다니는데 이곳을 단연 압권으로 평가한단다. 소소한 디테일까지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난 사실 먹는데 진심인 편이 아니라 웬만한 건 맛있다고 하는데 여긴 '정말' 맛있다.
그렇게 약 2시간에 걸친 저녁식사를 마치고 야경보러 잠시 나간다. 오리들도 모두 잠든 듯 목을 접어 동그르르 말아 숨기고 물가에 모여 앉아있다. 집집마다 벽난로를 피운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노란색 가로등이 거리를 밝히고 있다. 오늘 하루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은 즐거운 경험이 이어진 날이다.
영국 코츠월드(Cotswold) 여행 4편으로 이어짐.
2022.2.
글약방her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