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프랑스 파리(Paris) 여행 9편
파리의 야경은 간접 조명 덕분에 밤에 바라보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아름답고 운치 있게 보인다. 야경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어둠 속에 반짝이는 불빛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일까. 모든 것이 환하게 드러나는 낮은 시야에 들어오는 수많은 자극이 오히려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게 한다. 밤은 불빛이 비치는 그곳에만 집중할 수 있다. 야경을 바라보는 이를 배려해주는 듯한 그런 밤의 다정함이 좋다. 낮에도 수차례 센 강(Seine R.)을 가로질러 다녔지만 센 강의 물결을 인지한 적은 없었다. 야경 속에서 마침내 센 강의 물결을 본다. 오렌지색 가로등 빛을 하고 있는 생동감 넘치는 물결에 한참 동안 시선을 뺏긴다.
에펠탑(Eiffel Tower) 쪽으로 가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 앞 다리를 건너 반대편 강변으로 걷는다. 강 저편 루브르는 낮에 본 모습보다 우아한 모습니다. 돔 형태의 유리 지붕이 있는 그랑 팔레(Grand Palais)는 하늘을 향해 여러 각도로 조명을 쏘아 올리고 있다.
그랑 팔레 앞에는 아치형의 화려한 다리가 있다. 황금동상으로 장식된 보자르 양식의 19세기 건축인데, 러시아 황제에게서 이름을 딴 알렉산드르 3세 다리(Pont Alexandre Ⅲ)라고 불린다. 밤에 특히 더 화려한 것은 금빛 조명을 받은 황금빛 조형물 덕분이 아닐까.
센 강을 유람하는 바토무슈(Bateaux-Mouches) 선착장도 보인다. 낮엔 보잘것 없어 보이던 바토무슈 간판이 밤엔 조명을 입어 근사한 모습으로 변신했다. 미운 모습을 숨기기에도 좋은 친절한 야경이다. 바토무슈를 탄다면 파리 여행을 마무리하는 날, 그러니까 여행 일정의 마지막이 좋을 듯하다. 내가 걸었던 거리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며 파리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다.
드디어 에펠탑 앞까지 왔다. 에펠탑 역시 낮보다 밤에 더 매력적이다. 황금빛 조명을 근사하게 차려입은 에펠탑은 무척 우아하다. 야경 감상하며 걷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숙소에서 7시에 삼겹살 파티하는데 시간이 거의 다 됐다. 여기서 숙소까진 걸어서 10분 정도, 서둘러 가야지.
숙소로 가는 길에 에펠탑을 계속 바라보고 걷는데 에펠탑은 매시 정각이 되면 조명 전체가 반짝반짝 거리며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아름답다. 파리에 에펠탑이 없었다면 무엇을 가슴에 담에 갈 것인가. 1889년, 19세기 건축이 21세기에도 이처럼 세련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랍다. 물론 건축 당시에는 수많은 비난을 받았다곤 하지만, 구스타브 에펠(Alexandre Gustave Eiffel)이 남긴 걸작이라는 데 지금은 그 누구도 반론하지 않을 것이다.
엄청난 양의 고기를 구워먹고, 와인도 곁들어 마시고 모두 뻗었다. 누워서 이런저런 각자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해의 마지막 날 파리의 숙소에서 만나 몇 시간 후 새해를 함께 맞이할 것이다. 대학을 중퇴하고 워홀 비자로 파리에 와서 구직 중인 사람, 잠시 휴가를 내서 혼자 여행 중인 프로골퍼 선수, 건축 설계를 공부하는 대학생, 피아니스트, 취업에 성공한 대학 졸업반 동기 둘, 그리고 나, 모두 7명의 여자가 모여있다.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한 인간의 역사를 만나는 일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끝없이 오고 간다.
밤 11시쯤 되어서 다들 옷을 챙겨입는다. 다 같이 밤 12시에 에펠탑에서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하는 거 보러 간다. 소매치기가 많으니 중요한 소지품은 다 숙소에 두고, 오늘은 대중교통이 무료라 지갑도 숙소에 놓고 내 카메라 하나만 챙겨서 나간다. 지하철을 타고 2코스, 갈아타고 1코스면 도착이다. 지하철은 에펠탑 새해맞이 행사 보러 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23시 45분에 내려서 에펠탑이 보이는 곳으로 가는데 정말 발 디딜 틈이 없다. 인파에 떠밀려서 서로 놓칠까 봐 7명이 팔짱을 끼고 겨우겨우 에펠탑 보이는 자리까지 간다. 여기서 누구 하나 넘어지면 압사하겠다.
드디어 새해 카운트를 시작하고 에펠탑이 레이저를 쏘아댄다. 새해다! 1월 1일! 폭죽이 터지고 가져온 샴페인을 터트리는 사람들도 있다. 몰려있던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하면서 서로 떠밀려 7명이 2팀으로 헤어져버렸다. 다들 휴대폰도 숙소에 두고와서 거의 30분을 서로를 찾아다녀야 했다. 호주머니에 막 손이 쑥쑥 들어온다. 소매치기들이 대놓고 활동한다. 무서운 곳이구나 정말. 아무것도 안 들고 와서 다행히 우린 잃어버린 물건도 없고 다친 데도 없었는데, 한국 남자 한 명이 여기서 휴대폰이며 지갑이며 다 잃어버리고 같이 온 친구랑도 연락이 안 된다며 울상이다. 무튼 힘겹게 다시 숙소로 오니 2시. 씻고 3시 넘어서 잠자리에 든다.
파리 에펠탑 앞에서 수많은 소매치기들과 함께 맞이한 새해. 잊지 못할 것 같다. 아찔하고 유쾌한 기억으로 남을 파리에서의 2016년 새해 맞이, Happy New Year!!
파리여행 10편으로 이어짐.
2022.1.
글약방her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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