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9.
이제 숙소로 간다. 걸어서 1시간 거리인데 볼거리나 즐길거리는 전혀 없다. 그래서 숙소에 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구글맵으로 지름길을 검색해서 간다. 그런데 그 지름길은 심한 오르막길 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덕분에 무거운 배낭과 함께 운동을 제대로 했고, 오슬로 주민들이 실제 사는 동네 구경도 잘 했다.. 라고 우리 스스로를 격려한다.
경사진 언덕길에 제각각 다른 모양과 색깔을 한 집들이 나타난다. 노란색 집에서 귀여운 여자아이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빠를 향해 달려나온다. 인형집에 사는 인형이다. 빨간집은 19번지인가, 내가 19를 좋아하는데 빨간색 집에 하얀색 울타리, 까만색 철문은 거의 내 이상형에 가까운 오두막집이다.
언덕이 많은 지형적 특성으로 단차를 이용한 자연 폭포, 수로, 작은 연못도 흔히 볼 수 있다. 물이 굉장히 맑고 작은 쓰레기 조차 볼 수 없이 주변도 깨끗하다. 언덕이 많은 지형 덕분에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우리는 제대로 다리 운동중이다. 지름길을 검색해서 가다보니 외곽 순환도로인 듯한 곳도 지나가고, 사람다니는 길이 아닌 것 같은 길도 지나간다. 구글맵의 위대함이다. 어디든 '길'이라는 형태만 있으면 안내를 해주니 거리상으론 늘 가장 빠른 지름길을 따라 갈 수 있다. 오늘처럼 오르막길이 많은 경우, 체력에 따라 시간이 더 늦어질 수도 있지만.
걷다보니 '자, 지금까지는 연습게임이었어. 여기서 부터가 진짜 언덕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공원이 나온다. 널찍한 구릉지대가 모두 잔디로 덮여있다. 걸어가는 사람들, 공놀이 하는 아이들이 간혹 보인다. 저기서 공이 구르기 시작하면 끝없이 굴러내려갈 것 같은데, 내가 놀 것도 아니면서 주제넘는 염려를 해본다.
걷기 시작한지 1시간이 다되어 가는데 아직 숙소는 보이지 않는다. 선선한 날씨에 땀을 비맞은 듯 뒤집어 쓰고, 걷고 또 걷는다. 재미있다. 낯선 도시의 한 가운데서 땀 흘리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 흔한 여행자의 모습은 아닐것이라며 소소한 자부심마저 느낀다.
이제 숙소가 나올 때가 됐는데.. 하는 생각을 하자마자 언덕 꼭대기에 숙소인 듯한 건물이 보인다. 끝까지 오르막길이다. 오슬로(Oslo)는 도통 쉴 겨를을 주지 않는 차분하고 흔들림 없는 성격의 운동부 코치같다. 스웨덴에서 올 때도 2시간이나 기차를 연착시키더니,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법을 알려주려나보다.
저녁 8시,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핀란드랑 스웨덴에서는 도심에 한가운데 위치한 숙소라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는데, 여긴 내부 컨디션이 꽤 좋다. 샤워실도 많고, 방이랑 침대도 깨끗하다. 방은 4인실인데 우리가 늦게 체크인해서 둘다 2층 침대, 2층 당첨이다. 짐을 내려놓고나니 체력이 바로 다시 충전된다. 배낭의 위력(?)이란.
늦은 시각이긴 하지만 잠시 마트에 다녀오기로 했다. 내일 아침엔 미르달(Myrdal)로 가는 기차를 타야하는데 기차에서 먹을 간식도 사고, 오슬로 밤공기도 마실겸 숙소를 나선다. 내리막길이다! 공기가 오르막길을 올라오던 때 보다 한결 청량한 느낌이다. 고지대의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키면서 언덕길을 가볍게 내려간다.
올라올때도 축구하던 사람들이 보였었는데, 늦은시각까지 조명을 밝히고 운동중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숙소가 얼마나 높은지대에 위치해있는지 알수 있을 정도다.
배낭이 없을 땐, 되도록 구글맵을 돌리지 않는다. 주위에 물어가며, 직감을 따라 찾아다니는 것이 재미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근처 슈퍼마켓이 어디있는지 물어봤는데, 답변이 "Im also a stranger." 아마 우리랑 같은 숙소에 묵는 사람인가보다. 서로 행운을 빌어주고, 우린 마트가 있을 듯한 쪽으로 길을 건너간다. 아파트 같은 불켜진 건물이 보이고 행인 한사람이 걸어온다. 슈퍼마켓을 물어보니 바로 건물 뒤에 있단다. 길을 돌아가니 뭔가 불켜진 간판이 마트같다. REMA1000. 노르웨이 푸드마켓, 우리나라 이마트 쯤 될까. 과일 몇개, 빵, 생수, 요거트, 아이스크림 사고 계산을 하는데 5만원이다. 흠. 막대 아이스크림 하나에 3천5백원이니, 뭐 물가는 '더 말해 뭐해' 상황이다.
숙소에 다시 올라와 마트에서 사온 것을 챙겨 1층 바에 내려가서 먹는다. 따뜻한 생강차 한잔 마시고 나니 노곤노곤 피로가 풀린다. 땀흘리고 아이스크림 먹었으니, 마지막 코스로 생강차를 마셔줘야 감기몸살을 피할 수 있다. 널널하고 쾌적한 샤워실에서 따뜻한 물에 씻고, 깨끗한 침대시트에 들어가 누우니 세상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하다. 다채롭게 꽉 채운 하루가 또 지나간다. 늘 숙면하지만, 오늘은 더 숙면할 듯.
2021.12.
글약방her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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