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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죽음의 병」을 읽고ㅣ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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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남녀의 기묘한 계약관계와 그로 인한 며칠의 밤을 그려낸 독특한 플롯의 소설입니다.  

 

20세기 프랑스 문학계의 거장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 1914-1996)의 단편소설 <죽음의 병 La Maladie de La Mort>입니다. 1983에 발표한 이 작품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장장 2년여에 걸쳐 덜어내고 덜어내 '더 이상 지울 수 없을 만큼 얇아지도록' 감정의 본질만을 남기려는 작업을 거듭하며 완성했습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다듬어낸 문학적 고뇌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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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병>의 등장인물은 '당신'과 '여자' 오직 두 사람으로 이들의 행동과 대사는 매우 간결한고 건조한 문체로 묘사됩니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죽음의 병>은 마르그리트 뒤라스보다 서른여덟 살 어린 팬이자 연인 얀 앙드레아와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당신은 여자에게 낱말들을 반복해보라고 부탁한다. 여자는 그렇게 한다, 낱말들을 반복한다 : 죽음의 병... 당신은 여자에게 묻는다: 죽음의 병이 어떤 점에서 치명적이지요? 여자가 대답한다: 이 병이 죽음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병에 걸린 사람은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요. 또한 죽기 전에 삶을 가져보지 못한 채, 어떤 삶도 없이 죽는다는 걸 전혀 알지 못한 채, 그 사람이 죽으리라는 점에서요. (p27-28)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고자 시도하지만 육체적 소유를 통한 사랑은 실패로 돌아가고 욕망과 사랑의 분열 속에 자기 연민의 눈물을 흘립니다. '여자'의 직감으로 '당신'이라는 남자가 죽음이라는 병에 걸린 것을 알아채고 그에게 그 사실을 말해줍니다. 이 말이 무엇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 몇 가지 가능성이 떠오르네요. 

 

 

 

여자는 미소를 짓는다, 여자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죽음이 살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p59)

 

'죽음이 살아질 수 있다'라는 표현은 오직 마르그리트 뒤라스만이 쓸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여자'에게 그것을 알게 해준 존재입니다. <죽음의 병>에서 거의 모든 문장에서 사용되는 '당신'이라는 대명사는 주인공 남자를 가리키고 있지만 독자를 향하는 것 같은 착각도 동시에 하게합니다. 마치 이 세상 수많은 '당신'을 향한 메시지와 같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느 날 여자는 이제 거기에 있지 않다. 당신은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여자는 이제 거기에 있지 않다. 여자는 밤에 떠났다... 이렇게 당신을 위해서만 치러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의 사랑을, 미처 싹트기도 전에 잃어버리면서, 살아낼 수 있었다. (p65)

 

마침내 계약이 끝나고 여자는 떠납니다. '당신'이라는 남자는 여자를 잃고 나서야 욕망의 형태를 하지 않은 오롯한 사랑을 이루어냅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2년 동안 걷어내고 덜어낸 단어와 문장들 덕분에 단편소설이지만 마치 산문시를 읽은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지만 독자에게 충만한 여운을 주는 작품입니다.  


2025.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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