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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미셸 투르니에의 「꼬마 푸세의 가출」을 읽고ㅣ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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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 1924-2016) 단편선 <꼬마 푸세의 가출 La fugue du petit Poucet>입니다. 프랑스어 원제로는 이 작품집에 수록된 다른 작품인 <들닭 Le Coq de Bruyere>이 쓰였지만 번역본에서는 이 작품집 전체의 분위기를 가장 잘 대표하는 '꼬마 푸세의 가출'을 표제로 쓰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뒷모습>, <짧은 글 긴 침묵> 같은 미셸 투르니에의 에세이를 좋아하는데 단편소설도 궁금해서 골라본 책입니다.  

 

<꼬마 푸세의 가출>은 전체 14편의 단편을 엮은 선집으로 신화를 재해석한 걸작들입니다. 철학자이기도 한 미셸 투르니에는 자신에게 있어 '철학에서 소설로의 전이는 신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967년에 처음 발표한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꿈>과는 또 조금 결이 다른 작품들인데 마음씨 좋은 이야기꾼 할아버지 미셸 투르니에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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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인 「꼬마 푸세의 가출」은 제목부터 귀엽습니다. 무슨 연유로 꼬마가 가출을 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푸세의 아버지는 벌목꾼으로 곧 시골마을을 떠나 도심 고층아파트 메르퀴르의 24층으로 이사 갈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설레는 마음으로 이 사실을 알립니다. 

 

 

 

"내 장화는요?" / "장화라니? 무슨 장화 말이냐?" / "성탄절 선물로 약속했잖아요?" / "장화를, 내가?" (p61)

 

꼬마 푸세는 아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장화를 받고 싶다고 미리 일러뒀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까맣게 잊은 듯한 말투로 장화 대신 새로 이사 갈 집에 어울리는 컬러텔레비전을 사주겠다고 합니다. 그건 아버님이 갖고 싶은 것 아닌가요, 제가 대신 따져 묻고 싶네요. 

 

그러나 깨끗하게 정화된 공기도 조명도 원치않고 그저 나무가 좋고 숲을 뛰어다닐 장화가 필요했던 꼬마 피에르 푸세는 쪽지 한 장을 남겨두고 가출을 감행합니다. 두둥.

 

 

일곱 소녀들이 그를 둘러싼다. 그를 이끌고 간다. 저항할 수 없다. "우리의 성씨는 로그르야. 모두 자매들이지." 또다시 폭소가 터진다. 일곱 초롱이 마구 흔들린다. (p66)

 

동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이미지가 오버랩되는 장면입니다. 집을 나와 여기저기 떠돌던 푸세 피에르는 로그르가 사는 신비한 숲으로 흘러들게 되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냅니다. 초롱불을 든 일곱 소녀가 푸세 피에르를 둘러싸고 신나게 웃는 모습이 애니메이션을 보듯 눈앞에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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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를 외투 속에 감추렴. 너의 집에서 너무나 지겨울 때, 방문을 걸어 잠그고 신어 보아라. 그러면 장화가 너를 나무의 나라로 데려갈 거야." (p76)

 

로그르는 자신이 가진 야생의 보물들 중 하나를 꼬마 푸세 피에르에게 기념 선물로 주겠다고 합니다. 여기저기 널린 보물 가운데 피에르는 코끼리 귀처럼 볼품없이 처져 있는 커다란 장화를 고릅니다.  

 

 

눈을 감는다. 떠난다. 아주 멀리 떠난다. 그는 거대한 마로니에가 된다... 햇살이 부채처럼 활짝 퍼지더니, 청록색으로 무성한 그의 나뭇잎 그늘에 갇힌다. 그는 한없이 행복하다. 한 그루 커다란 나무는... (p78)

 

경찰관들에게 발견돼 귀가조치 된 피에르는 24층 아파트의 자기 방에 혼자 있습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로그르가 준 황금빛 가죽 장화를 끄집어냅니다. 그리고 행복한 꿈을 꾸기 위해 장화를 신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습니다. 꼬마 푸세는 커다란 나무로 변해갑니다. 

 

<꼬마 푸세의 가출>에서는 자연을 사랑하고 나무를 사랑하는 꼬마 푸세와 아름드리 나무를 벌목해 돈을 버는 푸세 아버지의 세속적인 모습이 대비됩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순수한 자연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진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무라는 정체성마저 잃어버린 채 말이죠. 


2025.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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