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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소설과 소설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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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소설과 소설가」를 읽고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묵(Orhan Pamuk, 1952년생)의 하버드대 강연록 <소설과 소설가>입니다. 2008년 가을 하버드대학교의 노턴 강좌에서 진행한 여섯 차례의 강연을 엮은 것으로 35년 간 소설가로 살아온 오르한 파묵의 문학가로서의 여정이 담겨있습니다. 세계적인 작가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오르한 파묵은 어릴 적 화가 지망생이었는데 소설을 만나면서 홀로 작가의 꿈을 키우고, 그 과정에서 좌충우돌하며 인생을 배우고 마침내 소설가로서의 삶을 개척합니다. 여섯 번의 짧은 강연에서 자신의 문학론을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됩니다. 오르한 파묵의 팬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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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는 1부 「소설을 읽을 때 우리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2부 「파묵씨, 당신은 이러한 것들을 정말로 경험했나요?」, 3부 「소설의 캐릭터, 플롯, 시간」, 4부 「단어, 그림, 사물」, 5부 「박물관과 소설」, 6부 「중심부」로 구성됩니다. 강연록이라 거의 모든 페이지에 메모할만한 문장들이 보입니다. 

 

소설은 두 번째 삶입니다. (p11)

 

1부 첫 문장입니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격하게 끄덕일 문장입니다. 오르한 파묵의 말처럼 소설 속 세계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만나면 경이로움과 희열을 느끼게 되고 독자는 소설에 더욱 빠져들게 됩니다. 

 

소설은 서로 모순되는 사고들을 우리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동시에 믿고, 동시에 이해하게 만드는 특별한 구조 (p39)

 

자신을 키운건 8할이 소설이라고 소설을 예찬하던 지인이 생각나네요. 

 

 

소설 창작은 소박한 동시에 성찰적인 일입니다. 'naive'한 동시에 'sentimentalisch'해야 하기도 하지요. (p20)

 

오르한 파묵은 강연 전반에 걸쳐 '소박한'과 '성찰적인'이라는 개념을 언급합니다. 프리드리히 실러가 논문에서 처음 제기한 분류인데 이 책의 영문판 제목 <The Naive and the Sentimental Novelist>에도 사용됩니다. 오르한 파묵에 따르면 'naive'란 '천진하고 즐겁고 쉽게 동화되는' 이라는 의미이고 'sentimentalisch'란 '자신의 목소리를 자각하고 소설 기법에 대해 고민하느라 분주한'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류에 따라 지극히 소박하면서 동시에 지극히 성찰적일 수 있는 이들이 좋은 작가가 될 것(p72)이며, 독자 역시 전적으로 소박하거나 전적으로 성찰적이라면 소설 읽는 즐거움을 모르는 이들(p58)이라고 부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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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소설 창작이란 중요한 것에 대해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 중요한 것처럼 언급하는 예술입니다. (p163)

 

어느 작가가 인터뷰에서 중요한 것에 대 말하지 않을 줄 아는 이가 좋은 작가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독자로 하여금 소설에 언급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게 하고 작가가 들려주지 않는 이야기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죠. 덕분에 같은 소설을 읽고도 독자마다 발견하는 메시지가 다른 듯합니다. 

 

 

오르한 파묵은 <소설과 소설가> 강연록을 출판하면서 작성한 에필로그에 이런 메시지를 실어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소설들을 읽고, 그런 소설을 직접 써 보려고 애쓰면서 소설에 대해 가장 잘 배우게 됩니다. 니체의 "인간은 예술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예술 작품을 창조하려고 애써야 한다."라는 말은 지당하게 느껴집니다. (p177)

 

독학으로 소설을 배운 오르한 파묵이 소설가들이 어떻게 소설을 쓰고 소설은 실제 어떻게 쓰이는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과도 같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그가 20대 초반에 소설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그를 말리던 가족과 지인들에게 했던 말이 인상적입니다. 

 

"소설은 우리가 인생을, 사람을 알기 때문에 쓰는 게 아니에요. 다른 소설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써 보고 싶기 때문에 쓰는 거라고요!" (p178)


2025.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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