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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안토니오 타부키 「인도 야상곡」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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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타부키 「인도 야상곡」을 읽고


친구를 찾고 있는 것인지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신묘한 서사를 가진 작품입니다.

 

이탈리아의 학자이자 작가 안토니오 타부키(Antonio Tabucchi, 1943-2012)의 <인도 야상곡 Notturno Indiano>입니다. 안토니오 타부키는 포르투갈을 깊이 사랑한 인물로 특히 페르난도 페소아(Fernando Antonio Nogueira Pessoa, 1888-1935)의 작품 전문 번역가였습니다. 수십 개의 이명(異名)으로 다양한 작품활동을 한 페르난도 페소아를 평론하던 타부키가 여러 분신들이 엉킨 <인도 야상곡>을 썼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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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야상곡>은 작중 화자인 주인공이 인도에서 실종된 친구 사비에르를 찾아다니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사비에르와 주인공은 겹쳐지고 마치 자신의 흔적을 추적하는 흐름으로 이어지는 듯 보입니다. 작중에서 또 다른 소설이 등장하고 서사는 중첩되고 인물들은 서로 뒤엉킵니다. 

 

 

"기록이라도 있겠지요. 알고 싶습니다." 의사는 거북하고 언짢은 표정으로 웃음을 지어보였다. "기록이라... 여기는 봄베이에 있는 병원입니다. 유럽식 분류법은 잊어버리시죠. 그건 오만한 사치예요." (p27)

 

사비에르의 흔적을 찾아 인도 봄베이의 한 병원을 방문합니다. '기록'에 기대는 화자에게 봄베이의 의사는 엄숙하면서도 경멸 섞인 시선으로 그런 유럽식 분류법은 오만한 사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어떠한 기록체계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문명사회를 비웃는 듯합니다. 

 

 


"육체 말입니다. 여행가방 같은 게 아닐까요. 우리를 실어 나르는 가방 말입니다." (p42)


"인간의 육체는 그저 외양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그가 말했다. "그것은 우리의 실재를 가리고, 우리의 빛이나 우리의 그림자를 덧칠해 버립니다." (p56)

 

여정이 진행될수록 작중 화자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에 대해 고찰하고 진지하게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사비에르를 찾아다니는 주인공에게 진정으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그저 외양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육체에 실린 실재하는 인간의 여러 모습은 어쩌면 분신과도 같다고 여겨도 될까요. 페르난도 페소아가 그랬듯 말이죠. 

 

"페소아라... 맞습니다." "그 사람을 하시나요?" 내가 물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을 아십니까?" "아니요, 어떤 것이었지요?" "내 안경을 주시오." 내가 말했다. (p61)

 

안토니오 타부키는 자신의 저서 <페르난도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에서 썼던 에피소드 한 구절을 <인도 야상곡>에 숨겨두었습니다. 페소아를 향한 타부키의 팬심이자 이 책의 소재를 제공한 이에 대한 헌사라고 봐도 되겠지요.

 

 

"당신의 그 사진하고 약간은 닮았어요. 확대는 맥락을 변조하지요. 사물은 멀리서 봐야 해요. 선택된 부분은 신중히 보시기 바랍니다." (p113)

 

확대는 맥락을 변조한다. 따라서 사물은 멀리서 봐야 한다. 우와.

 

<인도 야상곡>에는 전체 12개의 장이 서로 다른 배경으로 이어집니다. 사비에르를 찾아 나선 과정에 숱한 사람을 만나면서 그와 숨바꼭질하는 진짜 정체를 더듬어나갑니다. 이 소설이 단순히 실종된 친구를 찾는 이야기가 아님을 그리고 왜 하필 배경이 인도인가에 대해 생각하면서 읽다 보면 그러잖아도 얇은 책이 순식간에 마지막 장에 다다릅니다. 재미있습니다.   


2025.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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