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하트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 자유에 이르는 삶의 기술」을 읽고
전 세계에 명상 열풍이 일면서 다양한 방식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위빳사나 명상에 관한 개론서와 같은 책이 있어 읽어봅니다.
세계적인 위빳사나 명상 지도자 S.N.고엔카(Satya Narayan Goenka, 1924-2013)가 가르치는 위빳사나 명상의 간략한 내용을 서술한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 자유에 이르는 삶의 기술>입니다. 지은이는 고엔카가 초기에 임명한 위빳사나 교사 윌리엄 하트(William Hart, 1948)로 서문에서 이 책은 위빳사나 명상의 실제보다는 그 속에 담긴 붓다의 가르침을 공유하기 위해 펴낸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명상은 지도 자격을 갖춘 사람을 통해 직접 배워야하는 중대한 일이라며 이 책은 혼자서 명상을 하도록 도와주는 설명서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우선 사용되는 용어부터 낯설고 내용도 전혀 배경지식이 없는 저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훑어라도 보자는 생각으로 끝까지 페이지를 넘깁니다.
책의 맨 뒤편에 이 책에서 사용하는 주요 빠알리어(불교경전 언어) 용어에 대해 해설을 붙여두고 있습니다. 내용 중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용어 몇 가지만 정리해 봅니다.
ㅣ위빳사나(Vipassana): 자기 성찰, 마음을 깨끗이 하는 통찰, 마음과 몸의 무상한 성질을 꿰뚫어 보는 것.
ㅣ담마(Dhamma): 현상, 마음의 대상, 자연, 자연의 법칙, 해탈의 법칙, 즉 깨달은 자의 가르침.(산스크리트어 dharma다르마)
ㅣ깜마(Kamma): 행위, 특히 스스로 한 행위로써 자신의 미래에 영향을 미침. (산스크리트어 karma카르마)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에서는 고통의 진짜 원인이 마음의 반응이며 반응이 반복되어 갈망과 혐오가 생겨나고 그것이 클수록 우리의 사고방식과 언행에 더 큰 영향을 미치면서 고통이 증폭된다고 설명합니다.
어떤 고통이 일어나든 그 원인인 반응이 있다. 모든 반응이 멈추면 더 이상 고통도 없을 것이다. (p76) 3부 직접적인 원인
좋고 싫음의 마음을 내는 것이 고통의 원인이라... 아. 알듯 말 듯 어렵습니다.
무지, 갈망, 혐오라는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여 고통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붓다는 실질적인 길ㅡ팔정도ㅡ을 찾고 가르쳤다고 설명하며 이것에 대한 붓다의 쉬운 설명을 아래와 같이 수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부도덕한 행위를 삼가고 도덕적인 행위를 하며 마음을 정화하라." 이것이 깨달은 사람들의 가르침이니라. (p113) 5부 도덕적 행위의 훈련
역시 진리는 쉽고 단순합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 정화가 바로 위빳사나 명상을 포함한 명상의 궁극적 목표이겠지요.
바른 이해에서 바른 생각이 생긴다 / 바른 생각에서 바른 말이 생긴다 / 바른 말에서 바른 행동이 생긴다 / 바른 행동에서 바른 생활이 생긴다 / 바른 생활에서 바른 노력이 생긴다 / 바른 노력에서 바른 알아차림이 생긴다 / 바른 알아차림에서 바른 집중이 생긴다 / 바른 집중에서 바른 지혜가 생긴다 / 바른 지혜에서 바른 해탈이 생긴다. (p255) 10부 삶의 기술
명상가들 특히 위빳사나 명상을 하는 사람들은 바른 이해에서 출발해 지혜와 해탈의 경지에 이릅니다.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생각과 말, 행동과 생활, 지혜와 깨달음이 순차적으로 자리를 잡아간다는 말이 와닿습니다.
동양철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무상함에 대한 설명입니다. '자기'에 대한 집착과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상함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실상은 계속 변화하는 하나의 현상임을 깨닫는 것, 그 통찰을 얻는데 위빳사나 명상이 도움이 된다는 것인데 붓다는 "이를 생겨난 모든 것은 사라지게 되어있다"라는 말로 쉽게 설명합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실제를 하루라도 보는 것이 그것을 모른채 백 년을 사는 것보다 낫다. (p252) 10부 삶의 기술
무상함을 직접 보는 일. 흠. 명상을 한번 제대로 배워보고 싶네요.
2025.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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