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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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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읽고


자신만의 어둠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생의 어느 지점에서 그 어둠을 마주 보고 삶을 용서할 기회가 주어지죠. 

 

미국 극작가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유진 오닐(Eugene Gladstone O'Neill, 1888-1953)의 자전적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 Long Day's Journey into Night>는 저자의 비참했던 가족사에 대한 연민과 용서를 담은 작품입니다. <밤으로의 긴 여로> 작업을 하는 동안 유진 오닐은 눈에 띄게 수척해졌으며 울어서 눈이 부은 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1941년 완성한 이 작품은 유언에 따라 작가 사후 3년이 지난 1956년 공개되었고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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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는 1912년 8월 어느 날 주인공 티론의 여름별장에서 벌어지는 하루동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1막은 오전 8시 30분, 2막은 낮 12시 45분쯤, 3막은 저녁 6시 30분, 4막은 자정, 이렇게 전체 4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희곡의 등장인물은 제임스 티론, 메리 캐번 티론(아내), 제임스 티론 2세(맏아들), 에드먼드 티론(막내아들), 캐슬린(하녀)까지 다섯 명입니다. 

 

 

가난한 아일랜드인 이민자 출신 제임스 티론의 가족은 늘 가시돋힌 말과 태도로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냅니다. 이들 가족의 삶은 가난, 약물 중독, 알코올 중독, 불안, 비난, 부정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제이미 (지겹다는 듯) 왜들 난리예요? 다 그만둬요. 

티론 (경멸하는 태도로) 그래, 그만두자! 다 그만두고 다 피해 버려! 야망이라곤 없는 인간에겐 편리한 인생철학이지. 고작 하는 짓이라곤... (p.25) 1막 가운데

 

오후 6시 30분경, 8월인데도 티론의 별장은 벌써 어둑어둑합니다. 안개가 커튼처럼 창밖에 드리우고 항구 저편에서는 고래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안개로 뒤덮인 집, 서로의 앞을 가리는 안개 같은 사람들, 1막과 2막에서 티론의 가족 주변은 온통 암울함이 감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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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꿈꾸듯) 약을 쓰면 통증이 가시니까. 통증이 미치지 않는 과거로 떠나는 거지. 행복했던 과거만이 있는 곳으로. (p.125) 3막 가운데 

 

티론 (무자비하게) 올라가서 그 빌어먹을 독을 더 맞겠다 이거지. 

메리 (걸음을 옮기며 공허하게) 당신은 취하면 그렇게 상스럽고 가혹한 말을 하죠. 당신도 애들하고 똑같아요. (p.148) 3막 가운데 

 

메리는 독한 약을 하고, 티론과 두 아들은 독한 술을 마시며 절망스러운 상황을 잠시나마 잊으려 애씁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현실에서 달아나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큰 절망을 확인할 뿐입니다. 3막 마지막 부분과 4막 도입부에서 티론 가족의 비참함이 극에 달합니다. 

 


티론 (기운 없이) 그래,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포기하는 것뿐이지... 또다시. 

에드먼드 아니면 취해서 다 잊든지. (p.162) 4막 가운데 

 

병치레가 심하고 폐결핵까지 앓는 에드먼드는 유진 오닐 자신을 투영한 인물입니다. 술에 취해 또다시 포기와 무기력을 말하는 아버지 티론을 향해 보들레르의 시 「취하라」를 신랄하고 풍자적으로 낭송합니다. 

 

늘 취해 있어라. 다른 건 상관없다. 그것만이 문제이다. 그대의 어깨를 눌러 땅바닥에 짓이기는 시간의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거든 쉼 없이 취하라. 무엇에 취하냐고? 술에든, 시에든, 미덕에든, 그대 마음대로. 그저 취해 있어라.

 

희곡을 다 읽고나면 <밤으로의 긴 여로>라는 암울한 표제가 더없이 인간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긴 여로의 조각조각은 여지없는 고통이지만 전체 여로는 결국 삶과 가족을 향한 개인의 노력과 진실함이라는 것을 말이죠.  


2025.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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