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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JMG 르 클레지오의 「조서 Le Proces-verbal」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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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G 르 클레지오의 「조서(調書) Le Proces-verbal」를 읽고


한 인간의 삶을 탐구하고 그에 관해 쓴 상세한 조서(調書)입니다.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소설가 JMG 르 클레지오(Jean-Marie Gustave Le Clezio, 1940)의 1963년 데뷔작 <조서(調書)>입니다. 저자는 23세에 발표한 이 첫 소설로 프랑스 르노도 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주목받게 됩니다. 타고난, 그리고 운이 좋은 작가입니다.

 

<조서>는 '정신병원 또는 군대에서 탈출했을지도 모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설명하듯 세상과 단절되어 산 중턱 빈집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아담 폴로라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인위적이고 어쩌면 폭력적인 문명사회와 진정한 인간 본연의 모습에 관해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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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를 무대로 한 소설 <조서>의 주인공 아담 폴로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세상에는 관심이 없고, 미셸이라는 여자와만 가끔 소통하며 홀로 생활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역시 알제리를 배경으로 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연상하게 합니다.

 

<조서>의 아담 폴로와 <이방인>의 뫼르소는 아웃사이더이자 실존을 대변하는 인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 어느 한때 한 사내가 열어젖힌 창문 앞에 앉아 있었다. 키가 무척 크고 등이 구부정한 그 사내의 이름은 아담, 아담 폴로였다. 거지 행색의 그는 방 귀퉁이에서 거의 꼼짝도 않고 몇 시간이고 앉아 사방에서 햇빛의 반점들을 찾고 있었다. (p.13)

 

아담 폴로의 이름은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최초의 인간 아담과 그리스 신화 속 아폴로 신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에서부터 그가 인간 근원을 상징함을 알 수 있습니다. 키가 무척 큰데 구부정하다... 세상에서 그의 삶이 어딘가 불완전하고 부적절함을 나타내는 듯하네요. 고향을 영원히 잃어버린 아웃사이더인 걸리버가 연상됩니다. 

 

대부분의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그러하듯 <조서>의 아담 폴로 역시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ㅡ비록 세상을 살아가기엔 힘겹지만ㅡ 자랑스러워합니다. 이 부분이 왠지 마음에 드네요. 

 

아담 폴로의 생활은 바로 그러했다... 더 이상 인간적인 거창한 그 무엇도 지니지 않은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꼼짝 않고 오랫동안 기다린다.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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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항상 글을 쓰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지. 그렇게 하면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끼거든. 자기가 바로 자기 자신인 양 말하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사람은 더 잘 뒤섞이는 것이지. 더 이상 혼자가 아닌 거야. 제2, 또는 제3이나 제4의 인자, 그리고 그 망할 제1의 인자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자." (p.49)

 

아담 폴로가 비범한 인물임을 잘 보여주는 대화의 일부입니다. 그의 말에 미셸은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닌 듯 '알겠어. 난 머리가 아파'라며 그의 말을 자르듯 대답합니다.  

 

 

'은둔의 작가'로 불리는 JMG 르 클레지오는 아담 폴로의 삶에 적잖은 공감대를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무엇을 사유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에 관해 무엇을 설명할 수 있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진실된 답변일 것입니다. 

 

"지긋지긋해! 하루 종일 그놈의 정신병리학뿐이군. 당신들은 당신들이고 나는 나요." (p.336)

 

아담 폴로는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해 설명하려고 했다는 것에 수치스러움 마저 느낍니다. 잠시나마 그들로부터 이해받고자 했다는 생각에 말이죠. 

 

인간은 결코 분류하거나 분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아담 폴로의 외침을 통해 깨닫습니다. 당신은 당신, 나는 나, 세상에 잘 적응한 사람이건 그렇지 못한 사람이건 모든 인간은 그 존재 자체로 온전하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2025.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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