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동유럽 기행」을 읽고
여행을 다녀보면 동유럽은 화려하고 세련된 서유럽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사람들의 표정에서부터 건축물의 형태까지 어딘지 어둡고 경직된 느낌이 묻어납니다. 그런 동유럽의 1950년대를 그린 작품입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남미 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1927-2014)는 <동유럽 기행 De viaje por europa del este>에서 20세기 중반 철의 장막이 드리운 동유럽과 소련의 풍경과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기자 일을 하며 서독에 머물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어느 날 동독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국경을 넘습니다. 겁(?)도 없이 말이죠.
'철의 장막'은 장막도 아니고 철로 돼 있지도 않다... 그러나 십이 년 동안 집요하게 선전을 해 대면, 그로 인해 생겨난 신념이 모든 철학 체계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24시간 매일 저널리즘 문학에 매달리면 상식적인 생각이 극단적으로 무너지고 우리는 은유나 암시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_본문 가운데
그렇게 건너간 동독을 거쳐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소비에트연방까지 다니며 그곳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체제에 대한 순응, 그러면서도 진실과 자유를 희망하는 모습을 목도하고 기록합니다.
동독 영토에 있는 베를린의 서독 지역은 마치 외딴섬과 같은 도시입니다. 마르케스는 서베를린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사회주의 영토 안에서 거대하게 작동하는 자본주의와의 첫 만남은 내게 공허를 선사했다. 그곳은 다리도 없고 머리도 없는 부조화의 기형적인 도시였는데... _본문 가운데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어떻게 한 도시를 기형적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가를 본 것입니다. 정치 체제의 차이를 넘어선 그 무엇이 느껴졌다고 말합니다.
20세기 중반 마르케스의 눈에 비친 동유럽 국가들의 인상은 오늘날에도 일면 수긍할만합니다. 폴란드인들의 높은 자긍심, 서유럽 못지않은 자유롭고 밝은 분위기의 체코 프라하, 모든 것이 파괴된 상황에서도 복권을 사고 주점에서 주말을 보내는 헝가리 사람들까지, 역사의 DNA는 이어집니다.
프라하는 가장 소화하기 힘든 영향들을 너무 살찌지도 않고 위궤양에 걸리지도 않고서 잘 흡수한 도시였다. 가장 잘 보존된 고대 도시와 가장 건전하고 현명한 현대 사이의 중간이다. _본문 가운데
언젠가 체코 여행 중에 택시 기사가 '프라하는 작은 이탈리아'라고 묘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밝고 경쾌하지만 성미 급한 프라하 사람들은 동유럽보다 남부유럽인을 닮았다는 의미입니다.
마르케스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풍경을 다음의 한 문장으로 묘사합니다.
빵보다 복권 사려는 줄이 더 길다 _본문 가운데
사회주의 체제에서 용인될수 없는 복권 제도가 이렇게 활성화한 이유에 대해 마르케스는 헝가리의 공무원의 말을 인용하며 설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걸 할 수가 없습니다. 이건 토요일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체제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무력한 시민, 그러나 그들만의 방식으로 자유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동유럽 기행>은 20세기 중반의 동유럽을 통해 사회주의를 바라보는 자본주의의 시각을, 혹은 사회주의의 실제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2025.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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