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한드로 카소나의 「봄에는 자살 금지 Prohibido suicidarse en primavera」를 읽고
20세기 스페인이 사랑한 극작가 알레한드로 카소나(Alejandro Casona, 1903-1965)의 희곡 <봄에는 자살 금지 Prohibido suicidarse en primavera>입니다. 저자의 본명은 알레한드로 로드리게스 알바레스로 필명 '카소나'는 그가 스페인 베수요에서 살았던 집의 애칭이라고 합니다.
<봄에는 자살 금지>는 1937년 멕시코에서 처음 무대에 오른 작품으로 죽음, 그것도 자살을 직접적으로 다루며 역설적이게도 삶의 의미를 고찰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생명과 희망을 상징하는 '봄'과 극단적인 위험이자 소멸인 '자살'이 표제에 같이 사용된 것 역시 이 작품이 종국에는 삶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아리엘 박사의 마음 치료소, 일명 자살자의 집에는 각기 다른 사연으로 생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언뜻 보면 이곳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장소를 준비해 놓고 자살을 망설이는 이들의 죽음을 돕는 곳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 이곳은 죽음을 가까이서 접해 보게 함으로써 죽음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설립된 곳입니다. 진정한 마음 치료소이죠.
박사 사랑 때문에 절망한 사람이 여덟 명. 펠라그라 병 환자가 두 명. 삶의 방향을 잃은 사람이 네 명. 경제 파탄이... 코카인... 새로운 사례는 없습니까? (p.8)
극의 첫 장면에서는 자살자의 집을 운영하는 로다 박사와 간호사 안스가 등장해 현재까지 치료소에 들어온 사람들의 차트를 확인합니다. 박사는 지적이고 관대하며 안스는 얼굴이나 어투가 '매우' 진지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매우' 진지한 안스의 활약이 괜히 기대됩니다.
안스 슬픈 귀부인은 저희의 모든 시설을 다녀 보고 계시지만 끝내 어떤 걸로도 결정하지 못하십니다. 우는 것만 좋아하십니다.
안스 철학 교수님도 마찬가지십니다. 벌써 세 번이나 호수에 뛰어드셨지만 결국 헤엄쳐서 나오십니다. (p.10)
역시 간호사 안스의 화법에 웃음 포인트가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매우 진지하게 손님들의 상태를 브리핑하는데 그 내용이 어딘가 엇박자 투성이입니다.
사실 이 자살자의 집은 대를 이어 모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리엘 박사의 유지로 세워졌습니다. 적어도 자신만은 자살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아리엘 박사는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었고 좋은 영향력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마음 치료소를 만든 것입니다.
<봄에는 자살 금지>에서는 베토벤의 교향곡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음악치료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알리시아 좋은 아침이에요, 후안... (침묵회랑 빗장을 걸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봄에는 자살 금지'라는 팻말을 놓는다. 정원에서 베토벤의 교향곡이 아주 약하게 현악기 연주만 들리기 시작한다.) (p.128)
<봄에는 자살 금지>, 만약 매 순간이 봄이라면?
소재도 내용도 흥미롭고 재미있는 희곡입니다.
2025.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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