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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메릴린 로빈슨의 「길리아드 Gilead」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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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린 로빈슨의 「길리아드 Gilead」를 읽고


미국의 소설가 마릴린 로빈슨(Marilynne Summers Robinson, 1943-)의 두 번째 소설, 2004년에 발표한 <길리아드 Gilead>입니다. 이 책으로 마릴린 로빈슨은 2005년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에는 타임지가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도 선정되었습니다. 

 

<길리아드>는 1950년대 미국 아이오와 주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목사인 존 에임스가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남기는 편지 형식으로 자신의 삶과 신앙, 가족사와 미국의 역사를 잔잔한 서간체 문장으로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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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내가 떠날지 모르겠다고 말했더니, 넌 "어디요?"라고 물었어. 내가 "주 하나님과 함께 있으러"라고 말하니까, 넌 왜냐고 물었지. 내가 "늙었으니까"라고 대답하니, 넌 아버지가 늙은 것 같지 않다고 했지... 난 네가 아버지와 아주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거라고, 아주 멋진 인생이 될 거라고, 훌륭한 인생을 사는 길은 많다고 말했단다. 너는 엄마한테 벌써 들었다고 대답했지. (p.15) _첫 문장

 

<길리어드>의 존 에임스 목사는 노년을 맞이하며 건강이 악화되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제 겨우 7살인 자신의 아들이 성장한 후 읽어보길 바라며 긴 편지를 씁니다. 어린 자녀를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부모의 인간적인 마음과 주님의 자녀인 목사로서의 감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채로 존 에임스 목사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늘 그를 축복하는 부모ㅡ비록 일찍 돌아가시지만ㅡ의 존재는 아들의 인생에 귀한 버팀목이 되겠지요.

 

 

내가 '암담한 시기'라고 부르는 고독한 시기는 말했다시피 인생 대부분이었으니, 그 이야기를 빼고는 나를 잘 설명할 수 없겠구나. (p.68)

 

존 에임스 목사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들에게 자신의 인생 대부분이 '암담'했음을 숨기지 않고 고백합니다. 친구이자 동료 목사인 보턴과의 관계, 가족에 관한 이야기, 인종 문제, 신앙과 도덕적인 갈등과 같은 여러 이야기들을 자세히 풀어놓습니다... 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나는 행복을 얻기 이전의 긴 밤에 대해 말하면서도 슬픔과 외로움보다는 평온과 위로를 기억한단다. 슬픔에는 위로가 없지 않고, 외로움에는 평온이 없지 않거든. 거의 그렇지. (p.103)

 

신앙인이라면 대부분이 공감할만한 신앙이 주는 위로도 존 에임스 목사는 빼놓지 않습니다. 지금 나는 지나온 삶에 대해 어떻게 정리하고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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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은 어딘가에서 '우리는 무대 위의 배우이며 신은 관객이다'라고 썼지. 늘 그 은유에 마음이 끌렸어. 우리가 행동을 하는 예술가이고 신은 우리의 연기에 반응한다는 것이. 흔히 생각하듯 도덕적인 심판이 아닌 미학적인 평가의 개념이니 말이지. 

 

우리는 맡은 역할을 얼마나 잘 이해할까? 얼마나 자신 있게 그 역을 연기할까? (p.170)

 

<길리아드>에서 가장 마음을 울린 문장입니다. 인간은 무대 위의 예술가이고 신은 그 예술에 반응하는 관객이라는 표현에서 코끝이 찡할 정도로 감동이 됩니다. 나는 과연 작품을 기대하며 자리에 앉은 관객을 감동시킬만한 연기를 펼치고 있는가... 자문해 봅니다. 

 

 

<길리아드>라는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존 에임스 목사에게 <길리아드>는 자신의 무대였습니다. 자기 몫의 배역에 충실했던 그는 이제 다음 사람에게 무대를 물려줍니다. 그리고 그가 아끼고 아껴뒀을 마지막 기도를 남기며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네가 용감한 곳에서 용감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하마. 네가 쓸모 있는 삶을 살 길을 찾도록 기도하련다. 기도하고. 그런 다음에는 자야지. (p.330)

 

인간으로 살아가며 시대와 주어진 조건을 초월해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 연대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신앙 안에서 그 연대감은 기도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기도하고, 기도하며, 기도합니다.

 

<길리아드>가 더 없이 따뜻한 책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그 연대감 덕분이겠지요. 


2025.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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