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프랜즌의 「인생 수정 The Corrections」을 읽고
오늘날 미국 문단을 이끄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소설가 조너선 프랜즌(Jonathan Franzen, 1959-)의 대표작 <인생 수정 The Corrections>입니다. 2001년 발표한 이 작품은 저자의 세 번째 장편소설로 그 해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을 수상하고 《타임》 선정 100대 소설에 선정됩니다. 심지어 조너선 프랜즌은 '미국의 위대한 소설가'로 《타임》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인생 수정>은 노년의 부모와 세 자녀로 구성된 램버트 가족 내의 복잡한 관계와 각 인물들의 삶을 중심으로 20세기말에서 21세기에 이르는 미국 사회의 변화를 그린 사회 소설입니다. 성공과 실패, 심리적 갈등, 현대사회의 불안, 가족 내 상처와 회복, 생의 후회와 희망 등 <인생 수정>은 등장인물의 내면과 삶을 깊이 탐구하여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밝은 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철저한 암울함이 <인생 수정>의 도입부를 뒤덮고 있습니다. 730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이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입니다.
광기 어린 한랭전선이 가을의 대초원으로 성큼성큼 다가들고 있었다. 끔찍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예감이 어른거렸다. 하늘에 나지막이 뜬 해는 쇠약한 빛을 뿜으며 차갑게 식어갔다. 무질서하게 이어지는 돌풍과 돌풍. (p.9)
<인생 수정>의 주요인물은 파킨슨병에 걸린 가부장적이고 독선적인 노인 앨프레드 램버트, 남편의 압제에 눌려 살아온 앨프레드의 아내 이니드, 그리고 이들 부부의 아들 개리와 칩, 막내딸 드니즈입니다. 앨프레드는 가족을 모질게 다루는 독재적인 아버지 밑에 자란 탓에 아내와 자녀들에게 다정하지 못합니다. 가족 내 소통이 단절되고 불행이 끊이지 않습니다.
어둠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분별 있게 확립한 방향을 적극적으로 갉아먹고 있었다. (p.19)
마치 램버트 가문에 숙명처럼 주어진 불행의 악순환이 대물림되는 것만 같습니다.
램버트 가족은 모두 각자의 어둠과 고뇌, 다른 가족 구성원을 향한 불만과 분노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통이 단절된 가족의 전형인 것이죠. 이런 상황에 개리, 칩, 드니즈는 부모의 불행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발버둥 칩니다.
어머니의 세 자식들 중 내 삶은 어머니의 삶과 가장 다릅니다! 어머니가 추구하라고 가르친 것을 나는 얻었어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나를 못마땅해하다뇨! (p.285)
이니드는 아들 개리의 물질주의와 돈에 대한 집착, 과시욕을 에둘러 비난합니다. 마치 이니드 자신은 돈에 초월한 사람인 양 말이죠. 평생 돈에 집착하며 살아온 이니드 자신의 삶이 개리의 모습으로 발현된 것을 그녀는 모르는 걸까요. 개리는 그러나 차마 이 말을 어머니를 향해 내뱉진 못합니다.
앨프레드는 인생 최고의 연봉을 받을 기회를 7주 앞두고 스스로 사직서를 냅니다. 이 과정에 가족 구성원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으며, 혼자 결정하고 가족들에겐 통보만 합니다. 그렇게 은퇴한 후 앨프레드는 집안에 '처박혀'있기만 했습니다. 이니드를 포함한 가족들의 원성은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앨프레드에게도 할 말은 있습니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가타부타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말했다. 난 결정했어. 7주만 기다릴 수는 없었나요? 65세가 될 때까지만 기다릴 순 없었냐고요? 개리, 난 평생을 열심히 일했다. 내 은퇴는 내 문제야. 네 문제가 아니라. (p.201)
이들 램버트 가족의 대를 이른 불행과 불통은 도저히 끊을 방법이 없는 것일까요. <인생 수정>의 저자 조너선 프랜즌은 700페이지가 넘도록 암울한 이야기를 늘어놓다 마침내 작은 <인생 수정 The Corrections>의 가능성을 꺼내보입니다.
이제 그 무엇도, 그 무엇도 자신의 희망을 죽일 수 없다고 느꼈다. 그녀는 일흔다섯 살이었고,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갈 터였다. (p.729)
이 책 재미있습니다.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독자를 중간에 빠져나갈 수 없게 붙잡아두는 힘이 있는 작품입니다.
2024.1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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