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 Bright-Sided」을 읽고
2001년 발표한 잠입 취재기 <노동의 배신 Nickel and Dimed>의 저자, 미국의 저널리스트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 1941-2022)의 2009년 저서 <긍정의 배신 Bright Sided>입니다. 두 책의 표제 덕분에 국내에서는 '배신 시리즈'로 불리기도 합니다.
<긍정의 배신>은 바버라 에런라이크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노동의 배신> 출간 후 유방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하던 기간이 집필 계기가 되었습니다. 암 환자들의 극도로 긍정적인 태도, 자기계발서, 긍정심리학, 초대형교회의 번영, 동기유발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등 사람들을 '옥죄는' 긍정 이데올로기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발표 직후 언론의 찬사, 독자들 간의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또 다시 화제가 됩니다.
《1장. 암의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에서는 암 투병을 한 바버라의 경험이 가장 잘 드러나 있습니다.
긍정적 사고는 분노와 공포라는 실체적 감정을 부정하고 쾌활함의 분칠 아래 묻어 두도록 요구한다. 불평을 듣느니 가짜 쾌활함을 상대하는 것이 나은만큼 의료 종사자나 환자의 친구들에게는 몹시 편리하다. 하지만 환자 자신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p.68-69)
1장의 소제목 중 「긍정적 태도와 면역 체계」에서는 암환자의 긍정적 태도의 '배신'에 대해 설명합니다. 저자는 여기서 2004년 한 연구에서 암 선고를 받고 긍정적인 면을 더 많이 자각한 여성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삶의 질이 더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언급합니다. 어떻게 보면 암환자의 긍정적 태도는 '환자' 자신이 아닌 '주변인'을 위한 배려라는 것이죠.
암 환자들이 겪는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정신과 의사 지미 홀런드(Jimmie Holland)의 말을 인용한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10년쯤 전부터 정신과 육체는 연결되어 있다는 대중적 믿음을 토대로 우리 사회가 환자들에게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부담을 지운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끼게 되었다. 많은 환자가 "네가 암에 걸린 건 네가 암을 원했기 때문이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p.71)
암에 걸린 것이 성격 탓이라거나 암이 치유되지 않는 것이 암을 두려워하거나 분노하기 때문이라는 인식은 환자의 고통을 가중시킵니다. 그리고 이 책이 나온지 15년 여가 흐른 지금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대부분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여전히 그러한 시각은 암 환자 주변인들의 인식 기저에 깔려있습니다.
<긍정의 배신>에서는 몇 가지 책의 '배신'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언급된 책은 모두 당시 베스트셀러였으며 저 역시 일부러 찾아 읽기도 하고 나름의 깨달음을 얻기도 했던 책들입니다.
《2장. 주술적 사고의 시대: 끌어당김의 법칙》에서는 2000년대 초 「시크릿(2006, 론다 번)」이라는 소위 유사과학 관련 서적이 등장하고, 4장에서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1998, 스펜서 존슨)」를 예로 들며 기업에 파고든 동기 유발 산업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냅니다. 기업이 정리 해고 희생자들에게 주는 교훈으로 이 책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19세기에 긍정적 사고는 직장에서의 통제를 위한 수단, 더 높은 실적을 내라고 들들 볶는 자극제가 되었다. (p.146)
21세기에는 고도로 불평등한 이 사회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노력할 의사가 있는 사람의 삶은 조만간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겁이 나더라도 그 '변화'를 껴안고 기회로 여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p.250)
바버라는 <긍정의 배신>에서 빈곤이나 질병을 개인의 결점이나 마음의 기능장애로 보는 시각을 버리자고 말합니다. 타고난 낙천주의자가 있지만 고질적 우울증을 앓는 사람도 있으며, 질병의 원인은 결코 한 두가지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과 감정을 교정하는 내면으로의 여정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직면한 위협은 현실적이며, 자기몰입에서 벗어나 세상 속에서 행동을 취해야만 없앨 수 있다. (p.282)
<긍정의 배신>은 지금 부유하고 건강하지만 어떠한 계기로 빈곤과 질병으로 굴러 떨어질 수 있으며 심지어 그것이 얼마나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2025.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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