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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에르난 디아스의 「먼 곳에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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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난 디아스의 「먼 곳에서」를 읽고 


아르헨티나계 미국 작가 에르난 디아즈(Hernan Diaz, 1973-)의 2017년 데뷔작인 장편소설 <먼 곳에서 In The Distance>입니다. 첫 소설로 그는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문단의 주목을 받습니다. 에르난 디아즈는 사실 그의 두 번째 소설 <트러스트 Trust>로 유명세를 타는데 이 작품으로 2023년 퓰리처상을 수상합니다. 

 

소설 <먼 곳에서>는 '이방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 호칸 쇠데르스트룀은 가난한 스웨덴 이민자로 19세기 중반 미 서부 개척시대에 미국으로 여행하던 중 형과 헤어져 혹독한 환경의 미국 서부를 여행하게 됩니다. 한없이 이어지는 서부의 황야, 그 여정에서 호칸의 삶에 펼쳐지는 끝없는 고독을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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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의 첫 장면은 알래스카에서 시작됩니다. 

 

흰 하늘과 섞여들어가는 흰 평원을 어지럽히는 건 그 구멍, 얼음 위의 깨진 별뿐이었다. 바람도, 생명도, 소리도 없었다. _첫 장 소개문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19세기 중반의 알래스카를 묘사하는 표현 중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서정적인 소개문입니다. 

 

 

놀라운 점은 호칸 자신이 모국어를 말한다고 해서 더 자신감 있거나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스웨덴어를 쓸 때도 똑같았다. 이 조용하고 머뭇거리는 존재는 그냥 호칸의 원래 모습, 또는 호칸의 변화된 모습이었다. _본문 가운데 

 

낯선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떠돌며 호칸은 끝내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방인'의 정체성을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모국어인 스웨덴어를 사용할 때조차 어딘가에 속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이방인이라는 외떨어진 정서는 어쩌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근원적인 감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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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호칸의 여행 목적은 헤어진 형을 찾는 게 아닌 듯 보입니다. 그저 이 여정 자체가 <먼 곳에서> 호칸에게 주어진 유일한 삶의 의무이자 목적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호칸은 그 무엇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하지 않았고 존재하는 일 자체가 그의 시간을 잡아먹는 처지에 이릅니다. 

 

침묵과 고독이 시간 감각을 흐렸다. 단조로운 삶에서는 한 해와 한순간이 같았다. 계절은 지나갔다가 돌아왔고, 호칸의 일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_본문 가운데 

 

이 표현은 동일하게 몇 번 반복됩니다. 그것은 호킨에게 한순간과 한 해가 다름이 없음을, 황야에서의 삶이 단조로움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황무지에 남겨놓은 것은 절대 되찾을 수 없다. 모든 만남이 최종적이다. 아무도 지평선 너머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시야를 벗어난 것은 뭐든 영영 잃은 것이다. _본문 가운데 

 

<먼 곳에서>는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감정으로 덮여있습니다. 외로움을 책 한 권으로 설명한다고 하면 이 소설만큼 적합한 게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에르난 디아스의 서정적이고 톤이 낮은 문체와 이방인의 외로움이 절묘하게 어울립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호칸을 따라 막막한 황야를 여행한 기분입니다. 


2024.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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