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이 엮은 「죽음의 미학」을 읽고
소설가 이문열이 엮은 <죽음의 미학>입니다. 세계적인 문호들이 남긴 죽음을 주제로 한 아홉 편의 소설을 선정해 각각의 작품마다 소개글과 서평을 써두었습니다. 이런 선집을 읽으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넘어 여러 작품들을 비교해 볼 수 있고 부족한 문학적 지식도 얻을 수 있어 유익합니다.
<죽음의 미학>에는 래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스티븐 크레인 「구명정」, 잭 런던 「불 지피기」, 마르셀 프루스트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 셔우드 앤더슨 「숲속의 죽음」, 헤르만 헤세 「크눌프」, 어니스트 헤밍웨이 「킬리만자로의 눈」 , 샤를 루이 필리프 「앨리스」, 바이올렛 헌트 「마차」까지 총 아홉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속에 다양하면서도 잘 정리된 전범典範이 있어야 한다. 풍부한 전범에 바탕을 두지 않은 이론 중심의 연구는 소설을 화석화시킬 우려가 있다. _서문 가운데
책의 서문에서 <죽음의 미학> 집필 의도를 밝히고 있습니다. 잘 정리된 전범, 본보기가 될 만한 선집의 필요성 때문에 이 책을 기획한 것인데 스스로 전범이 될 작품들을 정리해내기 어려운 독자들을 배려한 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문열 작가는 풍부한 전범에 바탕을 두지 않은 이론 중심의 연구는 소설을 '화석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합니다.
허무가 존재의 조건인 것처럼 죽음은 삶을 삶답게 하는 전제가 된다. (...) 삶은 죽음 때문에 유한성에 갇히게 되지만, 또한 그 죽음 때문에 무한과도 견줄 만한 의미를 얻게 된다. _머리말 가운데
본론으로 들어가면서는 왜 하필 바람직한 전범을 정리함에 있어 '죽음'을 주제로 택했는지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히고 있습니다. 모든 소설가, 넓게는 모든 예술가가 작품활동의 어느 시점에 죽음을 다룹니다. 실존을 연구하는 데 있어 죽음은 무엇보다 중요한 전제가 됩니다.
"난 제일 어린 아기가 되고 싶어! 난 제일 어린 갓난아기가 되고 싶단 말이야!" 그 애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아기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을 테야." 그 애는 약속을 지켰다. _「앨리스」 가운데
수록된 작품 가운데 제목도 내용도 생소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랑스 소설가 샤를 루이 필리프(Charles-Louis Philippe, 1874-1909)의 「앨리스」입니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 짧은 단편인데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갓 태어난 동생에 대한 질투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그것도 스스로 굶어 죽기로 결심한 일곱 살 여자아이. 그 누구도 아이의 죽음에 대한 결단을 막아내지 못합니다. 작가 이문열은 이 작품에 대해 "이런 게 사람이다."라는 의미심장한 코멘트를 남기고 있습니다.
<죽음의 미학>에 실린 작품들 모두 흥미롭지만 역시 이문열 작가가 쓴 소개글과 작품마다 달아둔 코멘트를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2024.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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