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사형장으로의 초대」를 읽고
러시아 출신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 1899-1977)가 1936년 출간한 장편 <사형장으로의 초대 Priglashenie na kazn'>입니다. 이 작품은 배경이나 인물, 스토리에 관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 나보코프의 작품 가운데 가장 어렵고 의미파악이 어려운 작품으로 꼽힙니다. 일부 평론가는 <사형장으로의 초대>를 '환상소설'로 규정하는데 읽다 보면 이 견해에 납득하게 됩니다.
나보코프는 한 인터뷰에서 이 책을 "가장 몽상적이고 시적인 소설로, 주인공 친친나트를 시인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도 친친나트는 영지주의적 죄목으로 처형 당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사형장으로의 초대> 첫 장면은 친친나트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법에 따라 친친나트 C에게 속삭이는 소리로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모두들 미소를 주고받으며 일어섰다. 친친나트는 다시 요새로 보내졌다. _본문 가운데
<사형장으로의 초대> 주인공 친친나트는 30세의 교사로 판결에 따라 처형될 운명에 처해있습니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거대한 요새에 홀로 갇혀 있습니다. 독방에는 밖으로 난 작고 동그란 창이 하나 있고 문 쪽은 간수들이 친친나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한 커다란 창이 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읽고, 쓰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어쨌든 이제 내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 "유감스럽지만 저도 모릅니다. 항상 마지막 순간에 알려주기 때문에 저도 여러번 불평을 했습니다." / "그렇다면 내일 아침이 될 수도 있겠네요?" _본문 가운데, 친친나트와 소장의 대화
친친나트는 자신의 처형 날짜를 수차례 묻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는 20일 후 처형될 예정으로 소설 <사형장으로의 초대>는 친친나트에게 주어진 생애 마지막 20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친친나트의 모습은 마치 우리 인간의 운명을 대변하는 듯 합니다. 모두가 죽을 운명이지만 그날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실존적 불안 상태를 친친나트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사형장으로의 초대>에는 '속삭이는 소리'로 선고된 친친나트의 사형, 그 순간 그를 제외한 모두가 '미소를 주고 받'던 모습, 동료수감자와 아내 등 주변인 모두가 그를 속이고 희롱하는 일련의 상황 같은 어딘가 비정상적인 일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마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유일하게 '눈뜬 자'를 암시하는 듯한 설정들입니다. 이런 설정은 사실 역사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만큼 흔한 일이죠. 예수그리스도의 죽음. 소크라테스의 죽음.
'모든 것이 앞뒤가 들어맞는다.' 그는 썼다. '즉 모든 것은 속임수였고, 이 모든 것은 연극이고 불쌍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앞뒤가 들어맞는 상황을 만들어 나를 속였다. 이것이 이곳 삶의 막다른 골목이며, 이 좁은 경계 안에서 구원을 찾을 필요는 없다. _본문 가운데
<사형장으로의 초대> 속 친친나트의 처형은 형이상학적 죽음으로 묘사됩니다. 그는 죽임을 당함으로써 갇힌 곳에서 탈출하게 되었으며 거짓과 속임수로부터 벗어납니다. 그에게 있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의 실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2024.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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