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8월에 만나요」를 읽고
라틴아메리카 현대 소설의 거장, 콜롬비아의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José de la Concordia Carcía Márquez, 1927-2014)의 유고 소설 <8월에 만나요 En agosto nos vemos>입니다. 1982년 마르케스에게 노벨문학상을 가져다준 그의 대표작 <백년 동안의 고독>과는 문체나 분위기가 전혀 달라 팬들에게는 또 다른 마르케스를 만나볼 수 있는 즐거움을 줍니다.
<8월에 만나요>는 그가 꽤 오랜기간 공을 들인 작품이지만 마르케스는 만족하지 못했고 생애 마지막에 그가 치매에 시달리며 더 이상 소설의 줄거리를 따라갈 수 없었고 끝내 완성할 수 없었습니다. 마르케스는 자녀들에게 이 소설을 파기해 달라고 했으나 그들은 작품의 문학적 가치를 알아보았고 사후 10여 년이 지난 2024년 <8월에 만나요>를 출판하기에 이릅니다. 극적으로 생환한 작품이죠.
소설의 주인공은 결혼 27년차의 아나 막달레나 바흐라는 중년 여성으로 이 책 <8월에 만나요>는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최초이자 유일한 소설입니다.
그녀는 매년 8월 16일, 어머니의 기일에 산소가 있는 카리브해의 섬으로 혼자 여행을 합니다. 같은 시간에 페리를 타고 같은 택시로 이동해 같은 꽃을 사서 어머니의 무덤에 글라디올러스 한 다발을 올리는 게 이 여행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첫 번째 여객선을 타고 돌아갑니다.
그 순간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그러니까 돌아가는 첫 번째 여객선이 출발하는 시간까지 그녀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_본문 가운데
중요한 건 이 부분입니다. 혼자 섬에서 하룻밤을 묵는다는 것, 그리고 그동안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것.
결코 예전과 똑같은 여자로 돌아갈 수는 없으리라. 돌아가는 여객선에서 그녀는 그것을 어렴풋이 감지했다. 그녀는 자기와는 항상 다른 부류였던 관관객 무리 속에 있었고, 이내 분명한 이유도 없이 그들에게 역겨움을 느꼈다. _본문 가운데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과 예술, 문학에 조예가 깊은 아나 막달레나 바흐는 일 년 중 단 하루, 8월 16일에 전혀 다른 자신을 만나기 시작합니다. 카리브해 섬에서의 하룻밤. 교양 있고 품위 있는 중산층 여성은 조금씩 숨겨져 있던 자기의 본모습을 발견해 갑니다.
그것이 결코 자신이 바라던 모습도 아니며, 유쾌한 경험도 아니지만 멈출 수 없습니다. '분명한 이유'를 알지 못하던 아나 막달레나 바흐는 <8월에 만나요> 마지막 부분에서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마르케스의 자녀들 역시 아나 막달레나 바흐가 자신과 화해하는 장면에서 이 작품의 문학적 가치를 본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모와 자녀라는 그 복잡한 관계성에 대해 꽤 깊은 통찰을 전해주는 작품입니다. 부친의 당부를 어기고 이 책을 출간한 자녀분들의 '불효'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2024.10. 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고
가브리엘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의 「백년 동안의 고독 Cien años de soledad」을 읽고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1967년 출간된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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