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을 읽고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 1799-1850)의 1835년 소설 <고리오 영감 Le Pere Goriot>입니다. 이 책은 발자크가 1829년부터 출간한 90여 편의 소설을 하나의 작품으로 엮은 《인간 희극》의 주축이 되는 작품으로 19세기 초 초기 자본주의 사회의 실상과 개개인을 면밀히 탐구하고 있습니다. 작품집 《인간 희극》은 오늘날까지도 세계문학의 걸작으로 남아있습니다.
위대한 작가의 삶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발자크 역시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한 오랜 기간의 독서와 습작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습니다. 손을 대는 사업마다 실패하고 소설을 써서 빚을 갚느라 평생을 고생합니다. <고리오 영감>의 주인공 으젠 드 라스티냐크 역시 20대 초반의 가난한 시골 귀족 출신으로 성공을 위해 파리에 온 법학도입니다.
소설 속 인물이 겪는 고난, 그리고 소설가의 고난은 그 이야기를 읽는 독자로서는 싫지 않은 설정이죠. 인간이란.
인간의 마음이 애정의 꼭대기에 오르면서 휴식을 얻을 수 있다면, 그와 반대로 증오의 가파른 비탈에서는 거의 발을 멈추지 않는 법이다. _본문 가운데
보케르 부인의 하숙집에 머물고 있는 20대 초반의 라스티냐크와 60대 후반의 고리오 영감은 서로 옆 방에 살고 있습니다. 과부였던 보케르 부인은 고리오 영감에게 은근히 사심을 품고 있었으나 그 희망이 좌절(!)되고, 이에 앙심을 품고 고리오 영감에게 음흉한 박해를 가합니다. 하숙집 주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말이죠.
그들은 길에 있는 맹인 앞을 곧장 지나쳤고 불쌍한 사람의 얘기를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들었다. 그들은 가난에 쪼들린 나머지 가장 끔찍한 고통 앞에서도 냉정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런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했다. _본문 가운데
발자크는 <고리오 영감> 곳곳에서 자본주의의 비인간적인 이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를 가지지 못한 자, 가난한 자들이 모여 사는 하숙집, 그들의 삶에는 감정조차 사치인 듯합니다.
파리의 어느 하숙집에서 지내는 신세이지만 고리오 영감과 으젠 드 라스티냐크가 옆 방에 살고 또 가까워지게 된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봅니다. 그들은 비록 현재 가난하지만 사업가로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고, 시골 출신이지만 귀족이라는, 그러니까 자신들은 '그들'과 조금 다르다는 인식이 통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자기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고리오 영감이고, 내가 라스티냐크다.
2024.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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