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Cathedral」을 읽고
미국의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Raymond Clevie Carver, 1938-1988)의 단편집 <대성당 Cathedral>입니다. 1983년 발표한 작품으로 표제작인 「대성당」을 포함한 전체 열두 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습니다. 20세기 후반 미국의 평범한 소시민들을 등장인물로 내세워 카버 특유의 간결한 언어로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성당>이라는 웅장한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표제와 내용이 더없이 잘 어울린다는 걸 알게 됩니다.
소설가는 사소한 것을 사소하게 봐 넘기지 않는 이들입니다. 그들의 눈에 띄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조차 근사한 이야기가 됩니다.
ㅣ「보존」
「보존」은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은, 그러나 다음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하루종일 소파에서 TV를 보거나 자거나 누워 지냅니다. 다행히 아내가 일을 하고 있어 당장의 생계는 해결하고 있지만 소위 잉여인간처럼 숨만 쉬며 살고 있습니다.
그는 하루종일 소파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소파에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샌디는 생각했다. 그는 거실living room에서 살고 있다고. _본문 가운데
남자의 아내 샌디는 직장 동료에게 남편의 사정을 털어놓고, 동료는 자신의 삼촌은 직업 없이 23년째 침대에서 "숨 쉬고" 있다는 말을 합니다. 샌디는 이제 겨우 31세인 자신의 남편 역시 저렇게 23년간 소파에서 살아간다면... 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무서운 현실입니다.
ㅣ「대성당」
표제작 「대성당」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진 한 남자가 시각장애인을 직접 만나게 되면서 그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이야기입니다.
그 맹인이 말했다. "난 좋아. 자네가 뭘 보든지 상관없어. 나는 항상 뭔가를 배우니까.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이니까. 오늘밤에도 내가 뭘 좀 배운다고 해서 나쁠 건 없겠지. 내겐 귀가 있으니까." _본문 가운데
아내의 지인인 시각장애인이 부부의 집을 방문합니다. 남자와 그 손님은 TV를 함께 보게 되고 대성당이 나오는 장면에서 남자는 시각장애인 손님에게 대성당을 아느냐고 대뜸 물어보고 당연히 대성당이 어떤 모습인지 모른다는 그에게 대성당의 외관을 설명합니다.
남자의 설명은 조악하기 그지없고 시각장애인 손님의 제안을 따라 둘이 손을 맞잡고 펜으로 대성당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남자 역시 눈을 감고 같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시야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_본문 가운데
「대성당」은 제대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남자는 비록 시력이 있으나 지금껏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게 아닐까요. 역시, 표제작다운 멋진 작품입니다.
2024.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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