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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작은 우주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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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작은 우주들」을 읽고


이탈리아의 작가이자 명망 있는 중부유럽 연구가인 클라우디오 마그리스(Claudio Magris, 1939-)의 <작은 우주들 Microcosmi>입니다. 저자의 대표작 <다뉴브 Danube(1986년)>와 늘 함께 거론되는 작품으로 출간된 그해 1997년 스트레가 상을 받습니다. <다뉴브>가 다뉴브 강 유역 중부유럽 전반의 광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작은 우주들>은 마그리스의 고향인 트리에스테를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과 사람들을 들여다봅니다. 그야말로 사소한 것들, 그러나 그 자체로 하나의 온전한 우주인 '작은 우주들'에 관한 단상입니다.  

 

이탈리아 북동부 끝 슬로베니아 국경지대의 트리에스테(Trieste)는 19세기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했으며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는 귀속 분쟁이 잦았던 지역입니다. 그 덕분에 트리에스테는 이탈리아인 외에도 슬로베니아어, 프리울리어, 크로아티아어, 독일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배경의 주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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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르코 카페는 진정한 카페다. 단골들의 자유로운 다원주의와 보수적 충실성을 확인시켜주는 역사의 주변부다. 산마르코 카페를 압도하는 건 활력과 생명력 넘치는 다양성이다. _「산마르코 카페」 본문 가운데

 

<작은 우주들> 가운데 첫 번째 우주는 110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산마르코 카페」입니다. 구글맵에 보니 서점과 카페가 함께 있고 현재도 영업중(Via Cesare Battisti, 18, 34125 Trieste TS)으로 나옵니다. 언제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트리에스테의 다양성과 자유로움을 체감해보고 싶네요.

 

「공원」 편에 보면 트리에스테 다운 것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활력과 우울이며, 순수함에 대한 향수, 진정한 삶을 위한 책무이자, 거짓 삶에 맞서는 의식'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도시에 대해 이토록 애정이 담긴 묘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멋있습니다. 

 

 

코테초게임에서는 이기는 사람이 진다. 더 많은 카드를 얻고 더 많은 점수를 얻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삶이랑 닮았다고 토니는 말한다. 삶은 종종 많이 쌓으면 쌓을수록 더 많이 우리를 기만하기도 한다. _「안테르셀바」 본문 가운데

 

「안테르셀바」를 소제목으로 하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주석에 따르면 안테르셀바는 이탈리아 북부 오스트리아 접경을 일컫는 지역명인데 영토 관할을 두고 분쟁이 잦았던, 그러니까 트리에스테와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곳입니다. 이 지역에서 코테초(Cotecio) 게임이 유명한데 2-8명이 참여하는 카드게임으로 룰이 독특합니다. 그것을 우리 삶과 연결시키는 부분이 인상적이네요. 지는 것이 이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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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한다는 것은 이야기하는 것,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지나쳐가는 것이다. 순전한 우연으로 어느 해변에 닿고, 다른 해변은 놓치게 된다. _「석호들」 본문 가운데 

 

클라우디오 마그리스는 <작은 우주들>에서 사람들에게 별로 언급되지 않는 작고 소박한 장소들을 여행합니다. 주민들의 애환과 생생한 삶이 펼쳐지는 그 '소우주'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담아냅니다. 트리에스테 근처의 「석호들」을 다니면서는 이런 명언을 남깁니다. 마그리스의 이야기는 여행이며, 삶입니다. 

 

 

사랑할 줄도 모르고 행복해할 줄도 모른다는 것, 시간을 불태워 당장 끝장내려는 격분을 누른 채 끝까지 시간과 순간순간을 살아낼 줄 모른다는 것, 아마 원죄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시간을 죽인다는 것은 완화된 형식의 자살인 셈이다. _「콜리나」 본문 가운데

 

「콜리나」에서는 트리에스테에서 멀지 않은 고리치아(Gorizia) 출신의 철학 카를로 미켈슈테터(Carlo Michelstaedter. 1887-1910)의 말을 인용하며 '시간'을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는 인간 실존의 고뇌를 다루고 있습니다. TMI. 카를로 미켈슈테터의 부친이 트리에스테에 본사를 둔 보험회사의 지점장이었다고 합니다. 

 

두려움 없이 나무판에 매달려라. 난파는 구원이 될 수도 있으니까. _본문 가운데

 

<작은 우주들>은 <다뉴브>와 같이 독자를 공부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잘 알려진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매력있는 작품들입니다. 


2024.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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