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슈타인 가아더의 「소설로 읽는 철학, 소피의 세계」를 읽고
노르웨이의 소설가이자 철학교사인 요슈타인 가아더(Jostein Gaarder, 1952-)가 철학의 대중화를 위해 쓴 책 <소설로 읽는 철학, 소피의 세계 Sofies Verden>입니다. 1994년 발표한 작품으로 전 세계 6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읽혔으며 지금까지도 4,000만 부 이상 판매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자의 작품 가운데 <밤의 유서(2018년 作)>와 <꼭두각시 조종사(2016년 作)>를 인상깊게 읽었는데 이 책은 그 덕분에 '역주행'하여 읽게 됐습니다.
세계는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전혀 모르겠어.' 소피는 생각했다. 그런 건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하지만 소피는 이 질문이 타당하다고 여겼다. 이 세상에 살아가기 위해서 적어도 세계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싶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_본문 가운데
14세의 소피가 철학적 질문이 담긴 의문의 편지를 받는 장면으로 소설 <소피의 세계>는 시작됩니다. 보낸 이는 철학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알베르토 크녹스입니다. 소피는 크녹스 선생으로부터 여러 차례에 걸친 철학 수업을 받게 되고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방법을 배워나갑니다.
<소피의 세계>는 방대한 철학적 지식을 다루는 책이지만 눈높이를 주인공 14세 소피에게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입문서 정도로 봐도 좋습니다. 저자 요슈타인 가아더는 철학교사 답게 서양철학 전반의 역사적 배경까지 친절하고 조리 있게 설명합니다.
철학자란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란다. (...) '질문하는 사람'은 항상 가장 위험한 인물이야. 대답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지. 수천 가지 대답보다 질문 하나가 많은 불씨를 안고 있을 수 있어. _본문 가운데
크녹스는 어느 날 '모른다'는 것에 대해 수업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내가 알고 있는 단 한 가지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으며 데카르트 역시 자기가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으며 그것이 자기가 확신하는 유일한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합니다. 이 부분이 <소피의 세계>의 핵심이자 철학의 핵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철학도 과학도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죠.
"우리가 체험한 모든 일이 다른 사람의 의식 속에서 일어난다는 걸 상상해 봐. 우리가 바로 그 다른 사람의 의식인 거야." _본문 가운데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철학에 대한 지식뿐만이 아니라 소피와 크녹스, 그리고 소피가 받는 편지 속에 등장하는 힐데와 크나그 소령이라는 인물 간의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소피의 세계>는 사실 크나그 소령이 딸 힐데의 생일 선물로 쓴 소설이라는 '메타픽션(metafiction)'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크나그 소령과 힐데 역시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설 속 인물들이죠.
나란 존재의 실재함은 어떻게 알 수 있나. <소피의 세계>는 메타픽션이라는 장치로 허구와 실재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본문 중에 크나그 소령이 딸 힐데에게 '어쩌면 전쟁과 폭력에 저항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이 작은 철학 강의일지도 몰라'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요슈타인 가아더의 실질적인 이 책 집필 의도이며 독자들이 철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2024.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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