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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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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고


무척이나 낭만적인 제목의 소설, 스위스의 철학자이자 소설가 파스칼 메르시에(Pascal Mercier, 1944-2023)의 <리스본행 야간열차 Nachtzug Nach Lissabon>입니다. 2004년 출간된 소설로 2013년 동명의 영화로도 각색됩니다. 북쪽은 길이 없는 반도에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는 야간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다는 것 자체로 낭만과 부러움의 대상이네요. 

 

저자의 본명은 피터 비에리(Peter Bieri)로 '파스칼 메르시에'라는 필명은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과 루이-세바스티앙 메르시에의 성을 따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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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는 그레고리우스는 어느 비 오는 날 저녁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 낯선 여성을 구해냅니다. 그리고 그날 그녀가 남긴 수수께끼 같은 흔적을 추적하다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포르투갈 책을 만나게 되고 아마데우 드 프라두라는 미지의 인물을 찾아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게 됩니다. 

 

오늘 오전부터 제 인생을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삶이 어떤 모습일지 저도 모릅니다만, 미룰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흘러가 버릴 것이고... 남는 건 별로 없을 테니까요. _본문 가운데 

 

그레고리우스는 마지막 수업을 제대로 마치지도 않은 채 자신의 평범하고 무탈하던 일상을 이탈해 버리고, 그렇게 갑작스러운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합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일탈, 자유를 향한 결단을 분연히 실행해 냅니다.

 

사직서는 교장에게 보내는 메일로 갈음하는데 "인생은 한 번, 단 한 번 뿐이므로...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의 의지를 전합니다.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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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의 삶을 산다는 게 어떤 것일까 생각하며 남의 뒤를 밟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금 전 그의 마음속에서 터져 나온 감정은 아주 새로운 호기심이었다. _본문 가운데 

 

중년의 나이에 호기심으로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한다는 것, 그것이 단순한 취미생활 같은 부차적인 일이 아니라 그동안 일궈온 모든 커리어를 버리고 전혀 다른 경로를 택한다는 것은 '뭔가에 홀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습니다. 그레고리우스와 함께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고 가는 독자들은 그래서 적잖은 대리만족을 누리게 되겠지요. 

 

 

리스본에서 들른 헌 책방에서 그레고리우스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ㅡ제가 더 반갑네요!ㅡ을 발견합니다. 리스본이 페소아의 도시임을, 그레고리우스는 그제야 자각합니다. 프라두에 얼마나 몰두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문학을 가르치는 그레고리우스에게 이 에피소드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좋은 이유는 스토리뿐만 아니라 페이지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시적이고 철학적인 문장들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에 이끌려 리스본으로 간 그레고리우스, 그 언어의 연금술사가 어쩌면 파스칼 메르시어 자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024.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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